요세미티 계곡에 살던 인디언 부족, 미워크에게는 자벌레에 대한 전설이 있다. 인디언 소년 둘이 강에서 물장난을 하다 지쳐 바위 위에서 잠이 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들이 단잠에 빠져든 사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위가 점점 자라더니 하늘을 뚫었다.
마을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을 찾느라 야단이 났는데, 동물들은 아이들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있었다.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깨워 데리고 내려오려는데, 생쥐도 너구리도 곰도 사자도 높이뛰기를 해보았지만 바위는 너무 높았다.
그때 소리 없이 바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자벌레였다. 벌레는 밤낮으로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르고 아이들을 깨워 지상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그래서 그 바위의 이름이 ‘투토카눌라’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자벌레라는 뜻이다.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바위 이름은 엘 카피탄으로 바뀌었다.
요세미티의 거대한 암봉, 엘 카피탄에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졌다. 자벌레가 암봉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났다. 화강암 단일암석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엘 카피탄의 ‘여명의 벽(Dawn Wall)’을 두명의 암벽등반가가 맨손으로 기어올랐다. 콜로라도의 토미 콜드웰(36)과 캘리포니아의 케빈 조거슨(30)이다.
깎아 세운 듯 가파른 엘 카피탄 중에서도 ‘돈 월’은 최고난도의 등반코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3개 겹쳐놓은 높이의 암벽에서 이들은 두 개의 점이었다. 로프나 볼트 같은 장치 없이는 등반 불가하다고 여겨진 수직암벽에 매달려 이들은 먹고 자며 한뼘 한뼘 이동했다. 그리고는 지난 14일 마침내 ‘돈 월 맨손 등정’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12월27일 도전에 나선지 19일 만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2주. 금연, 운동, 다이어트, 공부 등 새해결심에 이미 실패한 사람들은 ‘3,000피트 암벽등반 성공’ 같은 뉴스를 보며 자책감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남들은 저렇게 굳은 결의로 뜻한 바를 이루는 데 나는 뭔가 … 싶어진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 뒤에 숨어있는 숱한 실패를 본다면 너무 기죽을 일도 아니다.
‘성공’은 케익의 아이싱 같다. 가장 화려하고 달콤하지만 그 밑의 빵이 없으면 아이싱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 땀 흘린 노력과 숱한 시행착오들, 밤잠 못자고 구상한 아이디어들과 뼈아픈 실패의 경험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좌절감과 절망감 … 빵을 만드는 밀가루와 버터, 계란, 설탕, 우유, 베이킹 소다 같은 재료들이다. 이들 모두를 섞어 탄탄한 경험의 빵을 구워두면 어느 날 성공이라는 아이싱이 찾아들고, 이전의 모든 수고가 인정받게 된다.
콜드웰과 조거슨의 등정 19일 뒤에는 7년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세계적 암벽 등반가인 콜드웰이 ‘맨손 등반’을 구상한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조거슨이 2009년 합류한 후 두 사람은 엘 카피탄에 가서 수없이 훈련을 하고 전략을 짜고 등반 시기와 경로를 정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성공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악천후로 등반을 포기해야 했던 때가 있었고, 발목이 부러져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때가 있었으며,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넘어가지를 못해서 일주일을 버티다 두 손 들어야 하기도 했다. 이번의 ‘행운의 여신’은 그런 실패의 경험 끝에 찾아든 것이었다.
모든 성공의 뒤에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는 지를 알려면 실리콘 밸리를 보면 된다. 애플, 구글 등 첨단 테크놀로지의 산실인 그곳에서는 ‘아침에 깨어보니 유명해진’ 성공사례들이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그래서 그 몇배로 많은 것이 실패다. 누군가 혁신적 상품이나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두면 같은 분야의 경쟁자들은 모두 우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실패를 성공에 이르는 징검다리로 여기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엄청난 실패를 불사하는 사람만이 엄청난 성취를 할 수 있다”고 로버트 케네디는 말했었다. 수년에 걸쳐 엄청난 실패를 감수해야 했던 ‘돈 월’ 맨손 등반은 이들 등반가에게 무엇이었을까. 콜드웰은 그 자신의 ‘모비딕’이라고 했다. 조거슨은 가장 거대한 캔버스, 가장 담대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한발 한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발을 내디딤으로써 이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누구에게나 기어이 잡고 싶은 ‘모비딕’, 멋지게 채워 넣고 싶은 ‘거대한 캔버스’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몇번의 실패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성공의 아이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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