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적률 적용 등 고무줄 잣대… 국회 통과한 법안마저 시행 막아

2015-01-15 (목)
크게 작게

▶ 지자체 심의 따라 도심 재개발 용적률 달라지고 분양승인·분양가 심사 등도 담당 공무원이 좌우

▶ 과도한 기부채납·20여개 달하는 부담금도 문제

용적률 적용 등 고무줄 잣대… 국회 통과한 법안마저 시행 막아

정부가 올 들어 잇따라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지자체와 국회에서 처리가 지연되는 법안들이 많아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개발이 끝난 새 아파트 사이로 노후 주택가가 자리 잡고 있는 성동구 일대 전경.

[건설규제 이것만은 풀고 가자 - 법보다 더 무서운 지자체 주택규제]


“분양가 상한제 등 부동산 3법만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가 크고 작은 대책을 발표하면서 약속했던 규제완화안 상당수가 국회는 물론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규제 ‘전봇대’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A건설 주택사업 담당 임원)

국회에서 표류하던 부동산 3법 통과에 여야가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주택관련 규제가 주택사업을 어렵게 하고 있는 상황은 여전하다. 특히 재건축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규제 완화가 진행됐지만 재개발 사업 규제완화는 등한시되면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아울러 각종 부담금으로 사업성이 악화되고 분양가 심사 등에 적용되는 기준이 모호해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 벽을 넘은 규제완화 법안조차 시행과정에서 일선 지자체가 심의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가로막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주택관련 규제가 건설업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특히 재건축과 함께 도심주택의 유일한 주택 공급원인 재개발 사업에 관한 규제완화 대책은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용적률 제한·공공관리제 의무적용…사업 발목

현재 도심 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적용하는 용적률에 관한 문제다. 이미 상위법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서는 용적률을 최대한도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일선 지자체에서는 조례로 용적률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제3종 주거지역의 경우 법으로는 300%가 최대 적용한도지만 서울시의 경우 250%를 상한선으로 정해 놓고 기부 채납 등 요건에 부합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적용되는 용적률이 지자체의 심의에 따라 달라지면서 합리적으로 사업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결국 사업 지연과 사업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마포구 한 재개발조합의 관계자는 “법으로 보장된 최대 용적률을 그대로 적용하고 기부 채납 등 필요에 따라 용적률을 초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재건축에 비해 재개발 사업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관리제도 역시 업계가 지목하는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다. 재개발 사업이 부진한 주된 원인이 주택경기 침체 때문이기는 하지만 공공관리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또 다른 족쇄로 기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강동구 천호동의 한 재건축 사업의 경우 시공사 선정이 유찰돼 공사비 예정가격을 조정해 다시 입찰공고를 내야 했지만 공공관리제 아래에서는 관할 구청의 허가를 다시 기다려야 하는 등 공공관리제가 사업 지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공공관리제를 주민들의 자율 선택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통과 이후에도 공공관리제 의무적용을 고집하는 서울시와의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실제 적용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공공관리제가 도입된 사업장은 건설사들이 일부러 피하는 경우도 있다”며 “공공관리제가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예산을 더 확보하고 현재 드러나는 문제점을 개선하는 등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모호한 기준·기부채납 등 각종 부담금에 ‘끙끙’

지난 11월 한 중견 건설사는 분양을 앞두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모델하우스를 개관하는 날까지 관련 지자체에서 분양승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양가도 낮게 책정해 별 문제 없이 승인이 날 줄 알았지만 담당 공무원은 뚜렷한 이유 없이 당일 오전까지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오후에 주택사업 임원이 구청으로 직접 달려가고 읍소를 한 후에야 오후 느지막하게 분양 승인이 떨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분양 승인이나 분양가 심사 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며 “담당자의 재량과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사업과 관련한 애매모호한 기준도 정비돼야 한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업계는 특히 당장 각 지자체의 분양가 심사위원회에서 공통적이고 객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심사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분양가 심사위원회는 교수와 주택분야 종사자, 전문직 등 10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주택 원가 분석 등 주택건설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실질적인 심의가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심의신청 후 심의까지 규정된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주변 시세와 비슷한 분양가를 정해 놓고 심사가 진행돼 실제 건설사의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부 채납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의 경우 아파트 건설사업에서 기부 채납액이 사업 이익의 80~90%에 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으며 유사한 개발 사업에 대한 기부 채납 규모가 서로 달라지기도 한다.

기부 채납과 함께 학교용지 부담금 등 주택사업과 관련한 각종 부담금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주택사업과 관련한 부담금은 20여개에 달한다. 국토부가 개발부담금 등 8개, 교육부는 학교용지부 담금, 환경부는 생태계보전 협력금 등 4개, 농림축산식품부가 2개, 산업통상자원부 1개, 산림청이 2개 명목으로 부담금을 각각 징수하고 있다.

대한주택협회 관계자는 “기부 채납과 사업 인허가가 연계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자체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기부 채납에 관한 기준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은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