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설업계 무차별 담합 제재

2014-12-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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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책사업 떠맡길 땐 언제고…번 돈 1/3을 과징금으로 내라니…

▶ 4대강·경인운하·고속철 등 사실상 정부‘할당’

건설업계 무차별 담합 제재

정권 차원의 밀어붙이기식 추진 과정에서 이뤄졌던 사업의 상당수가 담합 제재 대상이 되면서 본질은 외면한 채 업체 제재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된 4대강살리기 사업의 한 현장 전경.

[건설규제, 이것만은 풀고 가자]

건설업계가 공공공사 입찰 담합으로 부과된 막대한 과징금과 추가 제재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올해 부과된 8,000억원이 넘는 담합 과징금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크게 나빠졌다. 과징금 납부기한이 의결서 접수일로부터 60일 이내인 만큼 건설사들은 올해 부과된 과징금을 이미 상당 부분 납부한 상태다. 제재의 후폭풍도 거세다. 대외신인도 하락과 해외 경쟁업체의 비방으로 해외 수주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울러 담합에 따른 공공공사 입찰제한이 현실화할 경우 건설사들이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주요 국책사업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올해 번 돈 3분의1 과징금으로 날려


올해 시공능력평가액 1위 업체인 삼성물산의 3·4분기 영업이익은 1,93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5% 증가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646억원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26.8%나 줄었다. 2위인 현대건설 역시 3·4분기 영업이익이 2,30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2.0% 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351억원으로 20.1% 감소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입찰 담합 혐의로 부과된 과징금을 낸 데 있다. 공정위가 올해 삼성물산·현대건설을 포함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대형 건설사에 부과한 입찰 담합 과징금은 총 5,743억원에 이른다. 이들 10개 건설사가 올 들어 3·4분기까지 쌓은 총 영업이익이 모두 1조7,826억원임을 감안하면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벌어들인 돈의 3분의1을 과징금을 내는 데 쓴 셈이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과징금 납부에 쓰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해지고 하도급 업체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그나마 벌어들인 돈으로 과징금을 감당할 수 있지만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견 건설사들에는 수십억원의 부담금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담합 제재가 크고 작은 과거의 공공 발주 공사들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담합 제재가 4대강살리기사업과 경인운하 등 이전 정권 차원에서 추진된 대형 국책사업들이다. 담합 자체가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기보다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할당식’으로 각 업체에 분배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하철공사와 호남고속철 등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적으로 대형 사업에 참여할 능력을 갖춘 건설사가 제한적이다 보니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담합이 상당수라는 것이 업계 안팎의 판단이다.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음에도 원인은 무시한 채 개별 업체에만 담합의 책임을 지우다 보니 무더기 제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신인도 하락으로 해외 수주도 차질

담합 제재는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해외 수주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담합 처분 사실이 해외 발주기관의 불신을 초래하는데다 해외 경쟁업체들이 국내 건설사의 담합 사실을 비방자료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186억달러 규모의 원전사업을 발주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공사는 지난 2월 원청사인 한국전력에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내 건설업체들의 4대강사업 담합에 대한 사실 여부와 사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소명할 것을 요청했다. 한전은 원전사업과 관련해 어떤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소명해야 했다.

김운중 해외건설협회 진출지원실장은 “해외 발주처들은 대개 100억달러 정도의 대형 프로젝트를 5개 정도로 나눠 발주하는데 국내 건설사들은 이들 개별 프로젝트 입찰에 모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발주처가 국내 담합 사실을 문제 삼아 한국 업체들이 서로 담합해 밀어주려 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탓에 국내 업체가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입찰제한에 국책공사 올스톱 우려

담합 과징금과 더불어 부과되는 공공공사 입찰제한 처분도 ‘시한폭탄’이다.

담합이 적발된 건설업체는 독점규제법에 따라 과징금 부과와 함께 국가계약법에 의해 최대 2년간 공공공사 입찰을 제한하는 처분을 받게 된다. 특히 입찰제한 처분은 해당 발주기관은 물론 정부·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모든 공공공사에 확대 적용된다. 현재 건설사들이 입찰제한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처분 효력이 일시 정지된 상태지만 패소 판결이 확정될 경우 건설사들은 최대 2년간 국내의 모든 공공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공공공사 입찰제한이 현실화할 경우 주요 국책사업 추진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입찰제한 처분을 받은 건설사들을 제외할 경우 지하철·철도·교량·항만·댐 등 국책사업을 수행할 역량을 갖춘 건설사는 사실상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최상근 대한건설협회 계약제도실장은 “대형 국책사업에 입찰하려면 일정 등급 이상의 신용평가등급과 공사실적을 보유해 사전자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며 “하지만 입찰기회를 박탈당하는 51개사를 제외하면 공사유형별로 자격을 갖춘 업체가 아예 없거나 법정관리 업체를 포함해 1~4개사에 불과해 유효 경쟁입찰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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