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좋아하게 된 일 중 하나가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당면한 문제에 관한 친절한 조언을 받는다 해도, 현재 상황에 맞게 호환되고 치환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굳이 한발 더 나아가 핑계를 찾자면, 객관적으로 더 심각한 타인의 일에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하고, 그보다 덜한 자신의 일에는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짐작컨대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못 말리는 주체적 서사본능 탓이기도 하리라.
생각을 추슬러야 하는 때도 잦아졌다. 돌이켜 생각하고 곱씹는 일, 소모적일뿐더러 때때로 무의미할 수 있는 이 행위를 반복하면서 회한과 체념, 용납과 같은 무거운 카테고리의 감정과 마주하는 일도 생겼다.
앞으로 다가올 날에 대한 상상이 지난날의 추억의 분량과 엇비슷해지는 때가 이르고, 경험에 비례하여 이해와 관용의 폭이 다행히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다고 느껴질수록 더 크고 예민한 귀로 주위를 대하게 된다.
‘행복’ 이나 ‘성공’ 같은 삶의 의미를 자문하게 되는 계절이 돌아왔다. 두꺼웠던 달력이 2장밖에 남지 않았고, 여름내 어색해진 쌀쌀함에 문득 옷깃을 여미게 된다. 10개월여의 기록과 결과물에서 한해의 의미를 찾게 되는 요즘, 어르신들의 조언과 더불어 문득 눈에 띤 한 책이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찬국 교수의 책 <초인수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니체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그의 이론은 ‘인생의 고통’에 집중되어 있다. 아니, 인생의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 고통에 집중하는 인간의 고통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지 모르겠다.
고통의 시작은 각자가 내린 ‘삶의 의미와 목적’의 정의에서 시작된다.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시점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 바로 그때이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당연히 그것을 손에 얻기 위한 집념과 노력들이 뒤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 모두가 제대로 보상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더한 집착과 고통에 괴로워진다.
입으로는 안락과 편안함을 주장하면서, 실은 이러한 결말을 얻을 수밖에 없도록 자신의 삶을 디자인 하고 있는 모순된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니체 철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선의 열심을 다해 사는 인생에게 ‘철학’이나 ‘사상’은 종종 사치와 허세로 느껴진다. 하지만 평소 향방 없이 분주한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인간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으로 평생을 보낸 인생선배들의 일기와 같은 기록들을 돌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저자는 니체의 이론을 빌어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며,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 그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라며, 그제야 ‘왜 이 짐을 짊어져야 하지?’라고 자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말일까?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다가오는 큰 명절이나 휴가에 대한 기대도 커지는 때이다. 단순한 시선의 변화로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넘치는 주장. 그 같은 작은 기적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