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를 위한 청소인가?

2014-09-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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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 조 /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너 네 이사 가니?”

잠깐 전해줄 게 있어서 우리 집에 들른 친구가 물었다. 그것도 구석구석 널려있는 장난감과 책 나부랭이들을 대충 치운 후였는데 말이다. “너도 아들 둘 있어봐라, 앉으면 장난감 총이요, 밟히면 레고 조각이다” 목청을 높였지만 약간 창피하긴 했다.

솔직히 나도 결혼 전에는 한 깔끔 하는 사람이었다.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누가 내 방에 들어온다 싶으면 그 사람이 앉을 의자까지 정해주고 다른 건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깔끔쟁이였다. 한번은 아버지가 내 방에 오셔서 침대에 앉으신 순간부터 침대보가 구겨질까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해야 할 말씀을 잊어버리고 그냥 나가신 적도 있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괜찮았는데 아이를 하나 둘 낳고 보니 아이들 키우면서 집을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동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밥은 밥솥이 해주지만, 일하는 엄마로서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치우고, 아이들 씻기고 재우다 보면 옆에서 같이 쓰러져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고단한 일상이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청소였다. 밥이나 아이들 씻기는 것은 건너뛸 수가 없지만 청소는 며칠 안 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고, 가끔 시간 나서 치운 다 해도 돌아서면 어질러져서 투자한 노동력 대비 시각적 효과가 미비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동안 집안 청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지저분함을 참지 못하는 남편이 첫째 이유였고, 집을 깨끗하게 하는 여자가 살림도 잘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힘들여 청소를 하고 나면 큰 부작용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엄마 방금 청소했어!’ 라는 말에는 더 이상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말라는 뜻이 내포 되어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알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이들의 청결한 환경을 위해 청소를 하고 나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깨끗한 집은 어른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지 결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청소는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언제 어느 때나 정리가 잘 되어있는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처음 적응에 힘들어 했지만 나는 “힘들면 직접 치우시든가…” 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기 시작했다. 어질러진 집안에 익숙해지다 보니 웬만큼 더러운 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띄엄띄엄 하던 청소였는데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난다”며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려면 너무 깔끔한 환경이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어느 육아책에선가 읽고는 그나마 남아있던 자격지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시간여유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엄마”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일부러 청소를 안 한다고 하니 남편은 기가 막혀 했다. 게다가 나는 이 행복을 혼자만 누리기가 아까워 친구들에게도 틈만 나면 지저분함의 미학을 전파하고 있다.

남편이 다음 주에 스무 명 정도 손님을 초대할 일이 있으니 주말에 대청소를 하잔다. 명색이 호스트인데 차마 그것까지 거절할 배짱은 없어 마지못해 동의했다. 평소 안하던 청소를 하려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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