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에 출장 갔을 때 나는 최근 들어 가장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던 세월호 소식을 접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하던 날, 생때같은 아이들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나는 두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힘들었다.
배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나온 선장, 구조와 시신 수색 작업에 무책임해 보였던 해경, 사건 수습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던 정부, “가만히 있으라”는 구호를 들고 묵묵히 전진하던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세월호 관련 기사만 봐도 눈물이 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아이들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아니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6월에 다시 찾은 서울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2014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들이 보였다. TV나 라디오에서도 연일 월드컵 특수 효과를 노린 광고들이 나오고 월드컵 개최 전부터 2002년 못지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이번 월드컵도 떠들썩할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전통처럼 내려온 시청 앞 붉은 물결의 함성과 응원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월드컵 응원? 어디서 응원을 한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고, 시청 앞 광장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또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어 시민들이 쓴 메시지를 붙이거나 읽을 수 있게 해,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그 곳을 방문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그 근처에 사는 친구 한명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파 일부러 멀리 돌아간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청은 서울 시민들에게 그런 장소가 되었다. 이런 비통한 분위기에서 과연 축구 응원전이 말이 되냐는 논란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축구팀 공식서포터 ‘붉은악마’는 지난 5월 튀니지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붉은악마 측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만나 추모와 응원에 대해 논의하고 월드컵 기간에도 세월호 참사의 애도 분위기를 이어 가자고 제안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킥오프 후 16분 동안의 ‘소리 없는 응원’이었다. 응원단은 떠들썩한 응원 대신 경기 전반 16분간 침묵했다. ‘16’은 당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실종자 수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얼마 전 붉은악마 측을 만나 “튀니지 전 때 16분 침묵 응원은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한 뒤 “붉은악마가 월드컵 응원을 자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띤 응원으로 우리 대표팀에 힘을 실어 달라. 월드컵은 즐기되 세월호는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일부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실종자가 아직 12명이나 남아 있고, 그 슬픔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는가 묻는다. 맞는 말이다.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슬픔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간단히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슬픔 가운데 모든 일상과 활동을 중지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 또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붉은악마’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길거리 응원을 안 하는 걸로 합의한 상태이다. 아마도 다른 장소에서 길거리 응원은 이어질 것이다. 이미 지난 러시아 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응원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추모 시위와 월드컵 축구 응원이 만나서 우리의 열정과 열망이 표출되기를 희망한다. 하나의 응원이 아니라 수많은 응원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월호 사망자 292명과 실종자 12명의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와 월드컵 응원이 만날 수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끝까지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