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멋쩍은 이야기

2014-05-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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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한 /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

약 한 달여 전 한국에서 터진,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한국이나 미국의 한인사회가 아직도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술렁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 사고가,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이 없고, 각 사람들의 일상 생활습관이 아직도 오랫동안 전통처럼 굳어져 내려 온 부패한 관습과 부정직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 한 참담한 결과라는 사실을 조금씩 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단지 빵만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본래 인간이 물질보다더 중요한 정신과 영혼을 추구하는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직하고 원칙을 지키는사람이 간절하게 필요한 때에 2주전 우연한 연고로 한 정직한 젊은이를 만난 계기가 있어 지면을 통하여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2주전 아내와 함께 한인타운의 한 마켓으로 장을 보러 갔었다. 파킹장에 차를 파킹하고 마켓에 들어가 식품과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지고 파킹장으로 나와서 물건을 실으려다 차를 보니, 운전석 뒷쪽의 범퍼가 누가 금방 스치고 나갔는지 긁혀 있었다. 내가 파킹할 적에는 분명히 옆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불과 몇 분 사이에 누군가가 옆자리에 파킹하였다가 다시 차를 빼어 나간 모양이었다.


내가 불쾌하고 당황한 기분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누가 여기를 긁고 나갔지?”하며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도 놀랍고 역정스러운목소리로 “어머! 누가 차를 부셔놓고 도망갔대?!”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 옆에서 한 젊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 “어!? 이거 선생님 차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제 차를 파킹한다고 옆에 밀어 넣다가 그만 선생님 차를 긁었습니다. 수리비를 견적해서 알려 주시면 제가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하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운전면허를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람은 한인타운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미스터 오”라는 40대 후반의젊은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이 동네에 살지 않고 좀 거리가 먼데, 집 근처에 가서 견적을 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한 후 헤어졌다. 한인 타운에서 모든 일을 마친 후 저녁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근처의 바디샾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254불이 나왔다. “미스터 오”에게 전화하여 250불만 내라고 알려주자 그는 가격이 좀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하면서도 “한인 타운에 나오면 그돈을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내가 다음 주 목요일에 나갈 예정이라고 하자 그는 그때 오기 전에 한번 더 전화를 하라고 하였다.

차를 모두 수리하고 일주일 후 목요일 아침에 미스터 오에게 전화하였으나,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오늘 아침에 자기가 너무 바쁘니 내일 다시 전화하라고 하였다. 순간 나는 속으로 뜨아하여 “이 사람이 이제와서 오리발을 내미는게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과 함께 수리비 250불을 받기 위한 온갖 후속대책을 상상하면서 하루종일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다음 날 오후 한시로 정 해진 약속장소로 나가는데 한 30분 전에 미스터 오가 “자기가 지금 그 장소로 가고 있으니 올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도 마침 가까운 근처에 있어서 “10분 후 만날 수 있다”고 한 후 서로 만나자 그는 나에게 250불을 건네주었다. 내가 고마운 마음에 “가까운데 가서 점심이라도 함께 먹자”라고 말하였으나 그는 “시간이 없다”고 사양하였다. 내가 다시 20불을 건네 주면서 “그러면 나중에 식사라도 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극구 사양하면서 “자기가 사고를 내어 차를 수리하느라 선생님 시간을 빼앗아 죄송하다”라고 거듭 사과하며 바쁘게 떠나갔다. 처음 만난 젊은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그 동안 250불 때문에 괜히 의심하고 혼자서 노심초사하며 걱정했었던 생각이 떠올라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멋쩍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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