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2014-04-3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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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갤럽은 매년 미국인들이 어떤 장기투자를 선호하는지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지난 4월3일부터 6일까지 성인 1,02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조사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것으로 나타난 투자 대상은 30%를 얻은 부동산이었다. 주식과 금이 24%로 그 뒤를 따랐다. 금을 가장 선호하고 부동산은 19%에 불과했던 지난 2011년 조사 결과와는 크게 달라졌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언론들의 제목은 이렇다. ‘미국인들이 금융위기로부터 얻은 교훈을 벌써 잊어버렸음이 공식 확인됐다.’ 부동산 거품으로 미증유의 금융위기가 야기된 후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한동안은 부동산과의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곧 바로 빗나갔다.

우리는 쓰라린 실패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교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잊혀져간다. 세월의 풍화작용에다 최근 일들이 생각을 지배하는 인지 작용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한동안 별 탈 없는 시절이 계속되면 실패와 참사의 기억은 망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간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20년 전 비슷한 참사가 있었다.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그것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세월호 참사 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 가슴을 찌른다. 페리호 참사가 일어나자 모든 언론들이 지금처럼 취재경쟁을 벌였고 선주와 공무원등이 구속 기소됐으며 정부와 국회는 앞 다퉈 재발방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 참사를 보니 규정을 무시하는 회사, 관리 감독을 하지 않는 관청,재난 대처의 미숙함 등 모든 것이 당시와 너무나도 판박이라 놀랐다는 것이다.

참사에 대한 망각이라면 20년 전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불과 4년 전일어났던 천안함 침몰에서도 한국 정부는 어느 것 하나 배우지 못했다. 당시 발간된 천안함 백서를 보면 “생존자 구조를 위한 탐색 구조 및 인양이 지연됐으며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범정부 차원의 통합 노력이 부족했다”고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아마 세월호 백서에도 자구 하나 다르지 않은 똑같은 내용이 실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사와 실패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쓰라린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깊은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런 고통 없이 기억하고 교훈을 간직해 나가기란 힘들다. 오나라에 패한 월나라의 구천은 가시 많은 나무에 누워 자고 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배의 굴욕을 되새겼다. 이처럼 오욕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는 데는 끊임없이 이를 상기시켜 주는 ‘리마인더’가 필요하다.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은 그런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 독일은 유대인 수용소들을 없애는 대신 그대로 보존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쓰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다크투어리즘’ 혹은 ‘그리프(grief) 투어리즘’은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쓰라린 교훈을 되새기는 체험학습여행이다.


과거에 대해 눈 감으면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대부분 독일인들의 생각이다. 벌써 역사를 망각하고 왜곡을 일삼는 일본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런 의식과 방식이 비단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

세월호의 기억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외면해서는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 깊은 바다에서 건져 낼 세월호를 눈에 띄지 않게 치워 버릴 것이 아니라 참사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개방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을 ‘국가 재난의 날’로 지정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점검하는 ‘리마인더’로 삼기를 제안한다.

1905년 ‘이성의 삶’이라는 책에서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항상 과거를 반복하게 마련”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나야는 이 문장 바로 앞에 이렇게 썼다. “진보는 변화가 아니라 기억에 달려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이다. 똑바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리석음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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