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친절

2014-03-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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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 조 /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출장길에 홍콩을 경유하게 되었다. 머무는 시간은 약 세 시간 반. 그 정도면 공항에서 적당히 쉬고 기운을 충전하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홍콩에 내리자마자 공항 푸드 코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식 라면을 깨끗이 비운 뒤 게이트로 향했다.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았으니 출장 중에 필요한 문서도 검토하고, 시간이 나면 보려고 저장해 두었던 영화도 한편 끝낼 수 있었다. 이만하면 자투리 시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낸 것 아닌가 자못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게이트에 탑승 사인이 켜졌다. 빨리 들어가면 뭐해… 나는 미적거리며 줄을 섰다. 내 탑승권을 확인한 승무원이 말했다. “타시려는 비행기는 다른 게이트 입니다.”


그럴 리가! 몇 번을 확인했으나 내가 타야할 비행기는 공항의 반대편에 있는 게이트였고 출발 시간은 고작 20분 후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당혹해 할 새도 없었다. 트램을 타고 첫번째 정거장에서 내린 후, 지하로 내려가 또 다른 트램을 타고 제 2청사 6층으로 올라가 맨 끝 어디쯤이라는 승무원의 설명을 들으니 그 곳까지 가는 데만 20분은 너끈히 걸릴 듯 했다.

행동을 빨리 해야 했다. 1층으로 달려 내려갔는데 다음 트램은 10분 후에나 올 거라고 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다음 비행기는 언제 있을지도 모르겠고 모든 출장 스케줄은 엉망이 될 것이 뻔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트램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승무원이 지나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타려는 항공사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 승무원은 곧바로 연락을 취해 주었다.

해당 게이트 쪽에서는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한 모양이다.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자기를 따라 오라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2청사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근래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 운동의 결과는 매우 미비했다. 나는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숨이 차올랐다. 어깨에 멘 랩탑 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홍콩 국제공항은 쓸데없이 컸다. 그리고 그 승무원은 유니폼을 입고도 너무나 잘 뛰었다.

그녀를 따라 나도 쉬지 않고 뛰어야 했다. 나를 위해 뛰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공항 자체가 크고 혼잡해서 이 와중에 그녀를 놓쳤다가는 꼼짝없이 비행기를 놓칠 판이었다.

기껏 1마일 남짓 뛰면서 나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42km를 쉬지 않고 달려가 “이겼노라” 승전보를 전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는 그리스 병사를 생각했다. 그 옛날에 태어났다 해도 나는 승전보를 전하느라 목숨을 걸고 뛰는 일 따위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죽어도 더 이상은 못 뛰겠다 싶을 만큼 괴로워지기 시작했을 때 저 멀리서 게이트가 보였다. 나는 브릿지를 끊기 직전에 가까스로 탑승할 수 있었고, 나를 안전하게(?) 게이트까지 인계해준 승무원은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고마웠다. 그 동안 출장을 다니며 친절한 승무원들을 봐 왔지만 이번 같은 감동은 처음이었다. 본인 소속의 항공을 이용하는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먼 거리를 같이 뛰어준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앞으로도 이 항공사를 종종 이용할 것이다. 그녀 덕분에 잠시 머물렀던 홍콩도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내게 베풀어준 친절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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