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과 맛과 술에 취한듯 통영 밤바다 ‘춤추는 불빛’

2014-03-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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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녘 `주당들의 성지’ 다찌집 가보니

▶ 소주-맥주 `기본’ 시키면 굴·해삼·전복·문어 등 바다서 잡힌 안주 줄줄이

예술과 맛과 술에 취한듯 통영 밤바다 ‘춤추는 불빛’

조선시대 통영은 한양으로 통하는 별로(別路)가 따로 있을 만큼 은성한 포구였다. 그만큼 술과 음식 문화도 발달돼 있다. 통영의 중심지인 강구안의 야경.

그래, 니 잘 왔다. 술꾼 성지순례 한다 캤재? 그라믄 당연히 여 다찌집부터 와 봐야재. 이리 건너온나. 같이 한 잔 묵자. 반갑데이. 자, 일단 한 잔 받그라. 내 이름? 고마 됐다. 이름은 알아 말라꼬. 그냥 토영(통영) 아재라 캐라. 이래 다찌집서 만나믄 다 아재가 되고 조카가 되는 기라. 한잔 쭉 털어 넣고 들어보이라. 내 지금부터 여 토영 다찌집이 어떤 덴지 차근차근 이얘기해 줄라카이. 맞다. 일본말 다찌노미(立飮み)에서 왔다코도 카고 도모다찌(友達)에서 왔다카기도 칸다. 우리말로 하자믄 선술집(다찌노미), 친구끼리(도모다찌) 묵는다, 뭐 그런 뜻이라 카대. 글카이께네 일제강점기 때 생긴 이름일 끼(것이)다. 글타 캐도 다찌집이 일본식 술 문화라 카는 건 절대 아니데이. 이래 술 묵는 건 원래부터 여 토영 문화라. 우리 끼데이. 알겠나? 다찌집이라 카는 기 뭐냐 카믄, 술만 시키믄 안주사 마, 주인이 주는 대로 안 묵나. 쉽게 설명하믄 그긴 기라. 뭐 줄 지는 니도 모르고 내도 모르고… 그날 주인 아지매 마음이다.


글카믄 마산 통술집이나 삼천포 실비집하고 뭐시 다르냐꼬? 바라바라, 니 잘 들으래이. 여 토영은 있다 아이가, 종이품 삼도수군통제사가 300년 동안이나 와 있던 곳이데이. 저 육품들이 있던 데캉 우째 비교하노? 식재료도 식재료지만 그 술문화, 음식문화가 같을 수가 있었겠나? 조선시대 종이품이면 지금 차관급이데이. 지금이사 ‘지가 차관이믄 차관이지’ 캐도, 그때는 촌에서 차관이면 어마어마한 벼슬인 기라. 이품이 내려오면 마, 가솔 노비 다 다리고 온다 아이가. 이품 벼슬이 한양서 먹던 까탈시럽던 입맛이 그대로 내려오는 기라. 그기 여 토영 와가꼬는 풍부한 해산물하고 만나가… 거 뭐꼬, 요새 말로 카믄 퓨전이 됐으니끼네 을매나 식문화가 풍성했겠노? 그기 지금 남아 있는 기 다찌집인 기라.

어, 안주 나왔다. 무라. 좀 묵고 또 갈캐주께.


(일동, 10분간 섭식. 이후 취기가 올라 아재의 말투가 투박해짐)굴 마싯재? 지금이 절정이라. 크재? 송아지 부랄만 안 하나. 이제 한두 주 더 지나서 나오는 건 벚굴이데이. 그건 암만 크도 몬 묵는다. 뭐 서울 사람들은 그것도 마싯다고 무 샀트만, 여 토영 사람들은 그거 거들떠도 안 본데이. 내는 서울 사람들 보믄 고마, 불상타(불쌍하다). 고등어, 거 머라카노… 맞다, 고갈비. 세상에 세상에… 냉동했다 녹카가(녹여서) 손질해 가꼬는 다시 얼라논 그걸 꾸(구워) 놓고도 마싯다고 처묵어 샀태. 아이고 참… 말해 뭐하겠노. 이래 왔으이 좋은 거 마이 묵고 올라가기라. 이거? 꼼장어 수육 아이가. 이래 안 무봤재? 싱싱한 걸 요래 살짝 데쳐 무야 꼼장어가 제맛이 난다카이. 얼랐다 녹캇다 캐가 맛이 없어져 부리끼네 서울선 시뻘겋게 양념을 처발라서 안 꾸 묵나.

카-. 술맛 좋제? 요것도 좀 무바라. 참숭어 회다. 요새가 철이제. 이래 다찌집은 지철(제철) 바다 음식을 차례로 내 오는 기라. 정해진 거 읍따. 여 중앙시장캉 서호시장서 그때그때 나는 싱싱한 재료로 최대한 지줌(제 나름) 맛을 살리서 요리해준다 아이가. 메르치 회도 함 무바라. 이것도 생선이데이. 싱싱하이 회로 무 본께 말리 묵는 거랑 또 다르제? 아이고 아이고… 아지매! 야 처묵는 꼬라지 좀 보소! 그걸 와 버리노? 젤로 귀한 긴데. 아지매가 젊은 총각 왔다고 특별히 챙기줬는 갑꾸만. 그기 고노와다라 카는 기다. 해삼 내장. 고만큼이 얼매친(얼마어치인) 줄 아나? 밥에 함 비비 무 바라. 진짜로 지긴다(죽여 준다). 옛날에 우리 토영 어른들은 해삼이 있으면 내장만 쏙 빼 묵고 살은 던져 버리뿌다 안 카나.

…근데 니 핵교 어디까지 나왔노? 대학은 나왔다꼬? 그라믄 청마라고 아나? 백석은? 그래, 알아? 용타. 요새 아들은 뻘거벗고 테레비 나오는 가시나들밖에 모른다 카드만. 그라믄 내 이 얘기도 해 줄테이께 함 들어바라.

여 토영 다찌집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우리 예술가들의 찐한 얘기가 진짜 핵심인 기라. 청마는 본래 여 토영이 고향이니끼네 놔 두고 백석이 얘기를 함 해보재이. 백석이가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라 캐도 평생 여 토영을 그리워했다 안 카가. 니, 백석이가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이나 남깃다 카는 거 아나? 와겠노? 맞다! 사랑이데이. 이십대 청년 백석이의 마음을 호빡(홀딱) 빼앗은 게 토영 여잔 기라. 근데 이 여자가 머 하던 여자였겠노? 첫 번째 ‘통영’에 이래 돼 있데이.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퍼뜩 안 떠오르나? 지금 니가 술처먹고 있는 이 방 풍경 아이가? 백석이가 다찌집 가시나를 사랑한 거 아이었겠나? 내는 그래 본다.

중스비 얘기도 함 해보재이. 이중스비(이중섭) 알재? 진짜 불운한 천재 아이가… 근데, 중스비가 육이오 때 부산이고 제주도고 거렁배이처럼 전전하다가 1953년도에 통영공예학원 선생 자리를 얻었는 기라. 미술 선생. 그라고 2년을 여 살았다 아이가. 식구도 먼 타향(일본)에 있고 우짜든지 밀항선이나 함 타볼라꼬 여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근데 중스비가 말투도 여캉 다르고 얼굴도 하야이 곱상하니끼네 가시나들한테 인기가 있었다 안 카나. 하기사 내도 팔십년대 다찌집 다닌 기억을 해보자 카믄… 색동 저고리 입은 가시나들이 발을 쳐놓고 그 뒤에서 큰절을 하고 들어와서는 “한잔 묵어도 됩니까?” 카고 천사처럼 얘기해 쌓는데… 어데 요새처럼 버릇없이 “오빠야, 한잔 하이소” 이런 게 있노? 가재미도 젓가락으로 살을 살살 발라가 입에 넣어 주는데… 하이고, 그때가 진짜 좋았제… 아, 이거 이얘기가 우짜다가 이래 샜삣노?그래, 맞다 중스비. 중스비가 학교 급식이 지겨우면 ‘복자네 집’에 가서 밥을 묵었다 안 카나. 부둣가에 있는 술집인데 밥도 물 수 있는 그런 데였다 카대. 어디였겠노? 여 다찌집이지. 거 복자라는 가시나가 중스비한테 빠지갔고는 칙사 대접을 해주니끼니 맨날 굶고 비실비실 하던 중스비가 마, 포동포동 살이 안 올랐다 안 카나. 중스비 그림 중에 힘이 뻗치는 황소 그림 있재? 그기 다 여 토영서 그린 기다. 다찌집 가시나가 없었으면 아마 몬 그릿을 끼다. 아따, 내가 오늘 무신 말이 이래 많노? 자, 묵자. 도다리 쑥국 다 식겠다 고마.

(이후 한 통의 술이 더 들어옴. 김춘수, 윤이상, 박경리가 차례로 술안주가 됨)니도 맥주 안 좋아하는 가배? 그라믄 바까 달라 카께. 아지매! 여 맥주는 도로 가가고 쏘주로 주소. 서울선 참이슬, 처음처럼 묵는다 캐도 여선 이거 무라. 좋은데이. 마산서 만든 긴데 토영 사람들이 이기를 젤로 좋아라 칸다. 이래 쏘주 두 병, 맥주 네 병 담아서 한 바께쓰에 육만원이니께 첨엔 비싸 보이맨시로도 음식 나오는 거 보면 하나도 안 비싸재? 두 바께쓰째부터는 삼만원 받고. 근데 이게 원래 다찌집 방식은 아인 기라. 원래는 아지매가 묵는 거 봐 가믄서 알아서 음식을 한 점씩 차례차례 챙기 줬는데, 이기 마 외지 사람들한테 유명해지믄서 바끼삣는 기라. 얌체맨치로 알라들까지 데꼬 와서는 술 한 병 달랑 시키놓고는 계속 음식 내노라카이 이게 되나. 아지매들 마이 망했다. 그라다 보이 이래 주는 시스템으로 바낏네. 이게 세련돼 보일지 몰라도, 내는 참 아쉽다카이. 옛날 아지매 그 푸근시러븐 정이 사라지뿟는 거 같아서.

…야가 와 이라노? 니 취했나? 문디, 이래 좋은 걸 앞에 놔 놓고 더 묵도 몬하고… 야가 울라 캐샀네. 사는 게 힘드나? 그래, 개안타. 울어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여는 예인들의 땅, 토영 아이가. 자, 오늘은 이만 묵고 일어서자. 그래 잘 가거래이. 살다가 힘에 부치믄 언제고 또 내려 온나. 내려 와가 토영 다찌집에서 이 아재를 찾아라. 내 그때도 여 있을 끼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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