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놀이와 몰입의 축제

2014-02-2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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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희 논설위원

지난 2주 소치 올림픽으로 우리의 눈이 환해진 느낌이다. 눈밭과 얼음 위를 질주하고 날아오르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눈의 호사를 누렸다.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기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화려하고 우아한 연기가 단연 으뜸이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스키점프가 탁월하다. 스키를 V자로 벌리고 몸을 납작 접은 자세로 시원하게 활강하는 모습은 거대한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르는 듯 경이롭다.

겨울이면 펄펄 내리는 눈, 꽁꽁 얼어붙는 빙판을 조건으로 사람들은 정말이지 다양한 경기들을 만들어냈다. 갖가지 인위적 장치와 규정들로 고안해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기들을 보노라면 사람이 ‘호모 루덴스’인 게 맞구나 싶어진다. 놀이하는 존재, 유희의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호모 사피엔스), 도구로 뭔가를 만드는 존재(호모 파베르)에 더해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요한 호이징가였다. 네델란드의 인류학자인 그는 인류의 문화 기원을 인간의 놀이 본능에서 찾았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를 들고 하루 종일 재미있게 논다. 시키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논다. 재미와 자발성 - 놀이의 기본적 특성이다. 그러다가 옆에 다른 아이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경쟁을 한다. 그래야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놀이의 또 다른 특성, 경쟁이다.

놀이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행위라고 호이징가는 정의했다. 올림픽은 이런 놀이들의 대 제전. 선수들은 경쟁의 최고봉에 오른 놀이의 달인들이다.

경기에 임한 선수들은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다. 한 치의 방심도 파고 들어갈 틈 없이 100% 집중된 모습이 빛을 발하는 에너지 덩어리 같다. 온몸의 세포와 감각이 알알이 깨어나 혼연일체가 되는 특별한 상태, 몰입의 경지이다.

‘이 순간, 이 동작’에만 집중할 뿐 무념무상인 상태를 심리학계의 석학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흐름(flow)’이라고 표현했다.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맡기는 상태이다. 이런 몰입을 통해 존재의 충만함과 내적 평안, 행복감이 찾아든다고 그는 말한다.

몰입은 종종 신비로운 초월적 경험을 동반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가가 곡을 만드는 등 좋아하는 일에 심취하다보면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가버리는 일은 흔하다. 시간에 대한 감각도 자의식도 모두 사라진 무아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운동선수들은 시간이 슬로모션으로 흘러가는 정반대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몇 초가 아주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49ers 쿼터백이었던 존 브로디는 이런 회상을 했다. 경기 중 어느 순간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동료선수들은 공을 받을 위치로 달려가고 상대팀 선수들은 그를 저지하려 달려드는 데 그 모두가 슬로모션 같이 보였다고 한다. 어떻게 경기를 진행할 지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흐름’ 보다 좀 더 깊은 몰입의 상태로 다이앤 애커만은 ‘딥 플레이’를 말한다. 종교적 의식을 통한 영적 체험, 극한의 상황에서 경험하는 초월적 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몰입의 순간 잠재력과 창의력은 최고도로 발휘되고 자아가 확장되는 황홀감을 느낀다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 모두는 ‘놀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깊은 몰입에 도달할 수 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이다.

0.01초를 다투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 발동작 하나에 점수가 오르내리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인간 새처럼 비상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보면서 존재의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본다. 그 순간 그들은 완벽하게 살아있었다.

삶이 허전한 것은 몰입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생활은 살아 있으되 살아 있는 삶이 아니다. 감각들이 반쯤 잠들어 있는 반 수면상태의 삶이다.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재미있는 ‘놀이’가 필요하다. 일상사 다 잊고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뭔가를 찾는다면 그래서 몰입의 신비로운 희열을 맛본다면 삶은 훨씬 풍요로워 질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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