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을 다시 생각한다
2014-02-12 (수) 12:00:00
오늘은 링컨 탄생기념일이다. 미국대통령이 44대에 이르고 있지만 대통령의 생일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라함 링컨뿐이다. 워싱턴이 미국을 탄생시킨 대통령이라면 링컨은 미국을 재탄생시킨 대통령이다.
링컨은 왜 ‘위대한 대통령’으로 불리는가. 미국이 처한 가장 어려운 때에 리더십의 최선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은 세 가지다. 노예해방과 연방정부제도 수호 그리고 보복 없는 남북화해 정치다. 링컨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지금 북부와 남부가 각각 다른 나라로 갈라져 있을 런지도 모른다.
그가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민주당이 다글라스와 브렉큰리지 후보의 노예제도 찬반 논쟁으로 당이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남부 사람들은 학벌이 약한 링컨을 ‘촌사람’이라고 불렀고 공화당 내에서도 그를 업신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후보선출에서 경쟁자였던 시워드가 링컨의 입각 제의를 수락한 것도 자신이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링컨을 뒤에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평소 링컨이 너무 겸손했기 때문에 주변 참모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지도편달 하려 들었다.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그의 뛰어난 리더십 때문이다. 그의 리더십은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사업가, 기업의 간부들이 연구해 볼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링컨은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많은 비난과 가장 심한 중상모략을 받은 대통령이다. 그는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링컨은 학연이나 지연, 파벌을 따지지 않고 능력위주로 인사를 단행했다. 심지어 자신을 비난해온 원수에 가까운 인사들도 능력만 있으면 삼고초려해 등용했다. 시워드 국무장관, 스탠튼 국방장관도 한때 링컨을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특히 체이스 재무장관은 입각 후에도 사사건건 링컨의 정책을 비난했으며 동료장관들과 싸워 4번이나 사표를 냈는데도 링컨이 반려했다. 야전군 사령관 맥클레런 장군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대통령인 링컨과 국방장관인 스탠튼이 맥클레런의 숙소를 방문했을 때 전투에서 돌아온 맥클레런은 고단하다면서 링컨과 스탠튼을 본척만척하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스탠튼 국방장관이 격분하여 맥클레런 해임을 주장하자 링컨은 “저 사람은 우리의 승리에 꼭 필요한 유능한 장군이요. 나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의 구두를 닦고 그의 말고삐를 잡을 용의도 있소”라고 대답하며 맥클레런을 오히려 영전 시켰다.
링컨 리더십의 절정은 ‘모든 영광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그의 처세철학이다. 미드 장군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꾸물대는 바람에 남부의 리 장군을 사로잡지 못했을 때 모두가 미드 장군의 문책을 주장하자 링컨은 “군의 총사령관은 대통령이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말해 주변을 감동시켰다. 또 그랜트 장군이 빅스버그 전투에서 대승했을 때는 “이번 승리는 전적으로 귀하의 판단이 옳았고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했소이다. 축하하오”라고 편지를 보냈다. ‘잘하면 부하의 공이고 못하면 내 책임’이라는 보스 밑에서는 부하들이 죽을 힘을 다해 뛰게 되어있다. 나를 알아주는 상사를 가진 직장은 얼마나 행복한 곳인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링컨은 겉으로는 리드 당하면서 속으로 리드하는 고차원의 리더십을 보였다. 위대한 리더십이다.
그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다. 국민들은 링컨이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리더였기 때문에 그의 비전을 믿고 따랐다. 링컨은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승리한 후 남부의 어떤 지휘관도 처벌하지 않았다.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보복보다 화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요보다는 설득, 비난보다는 칭찬을 중요시한 보기 드믄 리더였다. 지금 한국과 미국 모두가 링컨적인 대통령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링컨을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