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루이지애나 땅 매입

2013-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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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따라 말따라

1803년,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에 이어 토머스 제퍼슨이 제3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 당시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지도부는 친 영국파와 친 프랑스파로 나눠졌는데 존 애덤스는 친 영국파였던 반면 제퍼슨은 친 프랑스파였다.

같은 시기 유럽의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나타나 전 유럽을 휩쓸고 있었는데 제2차 유럽 동맹 전쟁(1799~1802년) 중이던 1800년 10월 마침내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여 점령하였다. 이에 스페인 국왕 카르로스 4세는 북미대륙의 루이지애나 지역의 땅을 프랑스에 양도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의 평화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당시 스페인 소유였던 루이지애나의 토지는 나폴레옹에게 굴복하는 바람에 프랑스 차지가 되었는데 1803년 이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제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깜짝 놀랐다. 기울어가는 스페인의 영토라면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나폴레옹의 팽창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프랑스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태평양까지의 영토 확장을 노리는 미국으로서는 프랑스가 버거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뉴올리언스 항만은 미국의 수로건설을 위해 매우 유용한 항구가 될 터전이었던 것이다. 이에 제퍼슨은 곧 바로 친 프랑스파의 수장인 제임스 먼로를 미국의 특사로 임명하고 파리로 보내 뉴올리언스 항만의 매입을 타진하기로 하였다.

당시 북미대륙은 지금의 캐나다 지역은 영국령, 동쪽은 미국 영토, 중부 평원은 프랑스령, 그리고 서부 지역은 스페인령으로 나눠졌었다.

한편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1803년 봄 영국과는 일시 휴전상태이긴 했지만 또 한 차례 전쟁이 터질 것을 예감했다. 더군다나 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 식민지인 산토도밍고의 반란군 진압에 실패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제국 건설 야망이 좌절되면서 나폴레옹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 때 미국의 특사로 파리에 도착한 제임스 먼로의 뉴올리언스 항만의 매입 오퍼는 그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나폴레옹은 조그만 뉴올리언스 항만보다는 프랑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소유한 루이지애나 전체 매각의사를 타진했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성사되어 토머스 제퍼슨은 1803년 5월2일 프랑스 국왕인 루이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라고 명명한 212만 제곱 km가량의 토지를 1,500만달러에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토지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디까지라는 정확한 문서로 구비되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에는 해당 지역을 자세하게 그린 지도 한 장 없었으며 실질적으로 루이지애나와 인접한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스페인이나 영국의 협상을 거쳐야 정확한 면적이 산출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제퍼슨을 비롯한 대부분 미 의회 관계자들은 이같은 경계에 대해 지금의 미주리강 유역을 비롯 플로리다 서쪽부터 서부 텍사스까지 이르는 면적으로 확대해석했다.

아무튼 그로 인해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영토를 두 배로 확장하게 되었는데 같은 해인 1803년 마침내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 때 미국은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미국 상인들은 영국의 봉쇄를 무시하고 프랑스와 무역을 계속하는 바람에 영국을 격분시켰다. 이런 감정이 계속 쌓이며 미국과 영국 사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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