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역편견의 노예들

2013-11-2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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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성 논설위원

이탈리아는 지역감정이 극심한 나라이다. 무엇보다 밀라노로 대표되는 북쪽 지역과 나폴리와 시칠리아 섬으로 대표되는 남쪽 지역은 한 나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소득 차이가 엄청나다. 북쪽은 개인소득이 4만달러를 넘지만 남쪽은 절반인 2만달러에도 못미친다. 그래서 북부를 독립시켜 아예 다른 나라를 만들자는 분리주의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주마간산으로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 중에도 지역감정과 지역 격차를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밀라노에서는 난폭한 운전자들에게 ‘나폴리타노’(나폴리 사람)라는 욕설을 퍼붓는다. 또 이탈리아가 분리되면 북부 사람들은 머리 깎는데 애로를 겪게 될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 북부지역 이발사 10명 중 9명이 가난한 남부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지역감정은 ‘유럽의 최악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다. 하지만 이탈리아 지역감정의 배경에는 아주 오랜 세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도시국가 중심으로 경쟁을 해 온 역사가 있다. 아직까지 지역 간에 감정적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이탈리아의 지역감정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지역감정은 더 악성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를 앞세운 불순한 정치세력들에 의해 촉발되고 조장, 확산돼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본분을 잊은 언론들이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고려의 왕건이 남긴 유훈인 ‘훈요십조’(위작이라는 설도 있다) 때문에 지역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지난 수백년 역사를 보면 이런 시각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다. 조선왕조를 거쳐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영남과 호남 간에 감정과 차별이 그다지 심각했던 적은 없다.

또 영남 집권이 장기화 되면서 호남이 소외되고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이탈리아처럼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 상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역감정이라는 망령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를 끈질기게 휘감고 있다.

지역감정이라는 용어에는 어느 정도 대등한 상대 사이의 갈등이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전제돼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역갈등에는 이런 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지역감정의 린치가 자행되고 있다. 그러니 지역감정보다는 ‘호남편견’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더 솔직한 표현이다.

우리들은 생래적으로 편견에 취약하다. 뇌라는 것이 본래 폭넓게 생각하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를 싫어한다. ‘인지적 구두쇠’라고 불리는 작용이다. 그래서 단편적이고도 단순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고정관념을 갖고 상대를 평가하려 든다. 학력이 낮을수록 편견에 휘둘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경북대 로스쿨 면접장에서 한 교수가 “우리나라는 지역감정이 제일 큰 문제인데 저쪽(호남)에서 그렇게 한다”며 “채동욱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아느냐. 본적 세탁을 했지만 전라도 출신이라 그렇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교수는 심지어 경남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 실제로는 전라도라고까지 언급했다는 것이다.

정신 나간 이 문제 교수의 머릿속에는 호남에 대한 일그러진 차별의식과 편견이 자리 잡고 있음이 틀림없다. 소위 ‘엘리트 식자층’인 이런 인사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역편견의 폐해가 더욱 걱정스러운 이유는 사이버의 존재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지역편견을 드러내는데 그나마 조심스러움이 있지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섬뜩하고 선동적인 용어들이 난무한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편견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어리석고 철없는 아이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전염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망국적 현상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100%의 대한민국’을 표방하며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를 시정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 인사와 정책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을 물론 자신의 입으로 지역편견에 대한 우려를 직접 표명할 필요도 있다.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동과 서를 찢어놓고 있는 내부의 적들이다. 이들은 종북세력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지역 간에 증오와 불신의 씨앗을 퍼뜨리는 데 골몰하는 편견의 노예들이야말로 한국사회 최악의 바이러스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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