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주기원의 비밀 품은 우주전파

2013-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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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으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의 비밀을 파헤친다? 뭔소리냐고 하겠지만 현재 천문학자들이 실제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잡음은 TV나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았을 때 들리는 짜증나는 그것이 아니다.

태양계 밖 우주공간에서 지구로 유입되는 잡음, 다시 말해 우주전파(cosmic radio noise)를 뜻한다. 이와 관련 한국천문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동시에 4개 채널을 통해 우주전파를 관측하는 시스템 개발에 성공, 천문강국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초장기선전파간섭계(VLBI)를 활용한 우주전파 관측을 통해 우주의 숨겨진 비밀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VLBI는 먼 거리에 다수의 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우주전파가 각 망원경에 도달하는 시간의 차이, 즉 지연시간을 정밀 분석하여 전파 발신원의 위치를 찾는 우주전파 관측네트워크다.


예컨대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VLBI로 관측·분석하면 그 블랙홀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방식을 확장해 은하의 형성과 진화, 별의 사멸을 비롯해 우주의 기원을 밝혀낼 다양한 연구의 수행이 가능하다.

이런 엄청난 네트워크가 우리나라에 설치돼 있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이 그 주인공으로서 세계 최초로 동시에 4개 채널을 이용해 우주전파를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특히 천문연은 연구원 내에 동아시아 VLBI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한·중·일 3개국에 설치된 VLBI를 연계한 관측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센터에서 생산된 자료는 3개국 공동연구에 활용되고 있으며, 관측된 우주전파 신호를 융합하는 핵심 장비인 상관기(우주전파신호 합성장치)의 설치를 완료하고 중심센터로서 허브 역할을 수행 중이다.

KVN은 서울 연세대학·울산 울산대학·서귀포 탐라대학 등 3곳에 설치된 직경 21m의 전파망원경을 활용, VLBI 기술로 하나의 천체를 동시 관측하는 총 500㎞ 규모의 최첨단 관측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KVN은 3곳의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묶으면서 마치 한반도 크기의 초거대 전파망원경을 운용하는 것과 동일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망원경이 클수록 해상도는 좋아진다. 만일 KVN을 저궤도 위성이 위치한 해발 500㎞ 상공에 올려놓고 지표면을 촬영했다고 가정할 경우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3㎜급 해상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망원경에 유입된 우주전파는 반사경과 필터를 거쳐 주파수별로 분리된 후 각각 22㎓, 43㎓, 86㎓, 129㎓의 4개 수신기로 인도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문연 한석태 박사팀이 독자 개발한 KVN만의 독보적 4채널 동시 관측시스템이다. 상대적으로 저주파수인 22㎓의 우주전파가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면서 변형되는 정보를 이용, 고주파수 우주전파의 변형을 보정하는 초고주파 우주전파관측망의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다.

한 박사는 이에 대해 “광학 관측 분야에서 레이저 같은 인공 광원을 이용해 대기의 움직임을 보정해주는 적응광학 기술과 비슷한 원리로서 국제특허를 출원해 놓았다”고 전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이를 초고주파 영역인 86㎓와 129㎓에서도 천체 관측을 가능케해준 세계 최고의 기술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천문강국들조차 지금껏 지구 대기에 의한 변형을 보정하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86㎓와 129㎓의 우주전파 관측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퓰러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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