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측 불가능의 시대

2013-09-1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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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문

퓰리처상을 탄 뉴욕타임스 데이빗 핼버스탬 기자의 저서 ‘언론파워’에는 1970년대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보이지 않는 서열이 그려져 있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단과 악수할 경우 신문기자가 제일 먼저 서고 다음이 AP와 UPI 통신, 다음이 TV 방송기자 등으로 되어 있다. 80년대에 창설된 CNN은 처음에는 백악관기자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비회원 취급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취재해 그 설음이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CBS, NBC, ABC등이 CNN을 케이블 방송이라 하여 정상적인 TV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미국 대통령이 CNN을 괄시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큰 뉴스를 발표 할 때는 항상 CNN 등 TV 기자부터 찾는다. 시리아 군사개입 지원을 얻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어제 하루 동안 6개 TV 기자와 인터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에는 기자실에서 회원과 비회원이 있었다. 신문은 정회원이고 KBS 등 TV 기자들은 비회원이라 하여 출입처에서 독립적으로 취재는 하되 기자실에는 드나들 수가 없어 차별대우에 분통을 터트리고는 했었다. 지금은 TV 뉴스의 힘이 너무 막강해 대통령선거를 좌우할 정도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40년 전에는 기자들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 되었다. 기자실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면 고참기자들이 바둑을 두면서 “무슨 이야기야?”하고 묻는다. 이때 젊은 기자가 “어느 고위공무원이 혼외정사로 아들을 두고 있다는 스토리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치자. 그러면 고참기자들은 “그건 뭐 배꼽아래 이야기잖아? 사생활에 관한 문제라 스토리가 안돼. 우리가 사립탐정도 아니고...”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났다. 기사가 되고 안 되고를 데스크나 선배기자들이 판단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기자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만을 사실로 받아 들였다. 매스컴 엘리트 집단의 파워가 막강했다.

지금은 어떤가. 모든 사람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메일을 통해 기자역할을 할 수 있다. 윤창중 사건이 어떻게 해서 터졌는가. 기자들이 보도한 뉴스가 아니다. 친목사이트에 올려져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윤창중이 1960년대나 1970년대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있었다면 그 사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덮어졌을 것이다. 청와대 기자들이 그런 종류의 스토리는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기자의 힘이 빠졌다. 시민과 보도기능을 나누어 가진 때문이다. 오히려 신문이나 TV가 시민들이 취재한 것을 복사하는 경우가 많다. 리비아와 시리아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기자가 접근하지 못하는 뉴스를 시민들이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취재해 언론기관에 공급하고 있는 시대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떤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가를 예측할 수가 없다. 과거 50년이나 100년 걸리던 종류의 변화가 지금은 5년 안에 일어나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회장에 의하면 2025년에는 세계 인구 80억명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구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개념, 새로운 분야가 펼쳐지고 권력 등 모든 힘도 재분배 된다는 것이다. 신문과 TV가 디지털 문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변화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언론기관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바로 그 케이스다.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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