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주 랜초시대와 주지사 페드로 파헤스

2013-09-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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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말따라 길따라

역사학자들은 1784년부터 1822년까지의 기간을 ‘캘리포니아에서가장 평화로웠던 시대’라고 일컫는데 이름 하여 랜초시대이다.

캘리포니아의 랜초시대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페드로 파헤스(PedroFages)라는 인물이다.

페드로는 알타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 탐험을 시작으로 제1대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포르톨라(Portol?)를따라 2 차례에 걸쳐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탐험에 동참한 후, 제2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었다가 세라 신부와의 불화로 주지사 자리에서 물러났던 인물로 그 후, 페드로는 1777년부터 지금의 멕시코 소노라 지역에 파견되어 직업 군인으로서의 군복무를 지속하였다. 그는 군인으로서맡겨진 임무에 충실하였으며 또 그동안 아파치스(Apaches) 인디언과의전쟁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움으로써 대령으로 진급되었다.


그 후, 1781년 7월17~18일, 원주민 Yuma(Quechan) 인디언 족들이애리조나주의 콜로라도 강 인근의두 곳의 성당과 마을을 침략하여파괴했는데 이 사건은 당시 103명의 군인들과 신부들이 무참히 살해됐으며 남아 있던 여성과 어린아이들 80명도 포로로 잡혀갔었는데 당시에는,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이 때 페드로 대령이 이끄는부대가 그곳으로 즉시 이동하여Quechan(Yuma)족의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콜로라도 강과 Yuma, 애리조나의 앤자 트레일을 일시적이나마 다시 개통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1783년 이후, 그의 군대가그 지역에서 철수하자마자 Yuma족의 재반란으로 인하여 애리조나 지역과 콜로라도 강 유역이 봉쇄되는바람에 1783년 이후부터 1846년까지의 60여년간 멕시코와 캘리포니아의 육로는 완전히 막혀 버리고말았다. 이처럼 멕시코와 캘리포니아의 육로가 완전히 차단되자 뉴스페인(멕시코)과 캘리포니아 간의 유일한 길은 바닷길뿐이었는데 당시의 범선으로는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까지 항해 기간은 대략 30~50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1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 항해가 이루어져 그야말로 캘리포니아는 섬아닌 섬이 되어 60여년 동안 고립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당시, 미션시대의 캘리포니아는전체 면적의 6분의 1인 100만에이커(4,047㎢) 정도가 가톨릭교회의소유로 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국유지로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멕시코의 뉴스페인 국왕은 1782년 이 국유지를 그동안 캘리포니아 개척에힘썼던 공로자인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하사할 토지분배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일에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는 페드로 파헤스가 주지사인 Felipe de Neve의 후임으로다시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어 캘리포니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1784년부터 1791년, 주지사의 임기를 마칠 때까지 캘리포니아 탐험에 동참했었던 직업군인들의 행방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스페인 국왕의 명으로 캘리포니아의 토지를 분할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캘리포니아 랜초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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