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후 일본영화 명장 마사키 코바야시 작품선새

2013-08-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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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물 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 반전영화 3부작 `인간의 조건’은 걸작 초기 작품 4편 담은 박스세트 나와

전후 일본영화 명장 마사키 코바야시 작품선새

‘블랙 리버’의 깡패 조(타추야 나카다이)가 술에 취해 애인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다

전후 일본 영화 황금기의 명장 마사키 코바야시의 초기작품 4편을 모은 박스세트‘마사키 코바야시: 어게인스트 더 시스템’(Masaki Kobayashi: Against the System)이 이클립스(Eclipse)에 의해 출시됐다. 코바야시는 뛰어난 사무라이 드라마‘하라키리’(Harakiriㆍ1962)와‘사무라이의 반란’(Samurai Rebellionㆍ1967) 그리고 촬영이 눈부신 귀신영화‘크와이단’(Kwaidanㆍ1964)으로 잘 알려진 감독으로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한 영화는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9시간 40분짜리 3부작‘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ㆍ1959~61)이다. 코바야시는‘인간의 조건’을 비롯해‘하라키리’와‘크와이단’ 등 모두 11편의 영화에서 표현력이 가득히 담겨 있는 튀어나올 것 같은 황소 눈을 한 타추야 나카다이를 기용했는데 이번에 나온 박스세트 4편의 영화들 중에서 2편에도 젊은 나카다이가 나온다. 이 4편의 영화들은 전후 일본의 황폐한 시대에서부터 경제대국으로 변모하기까지의 일본사회의 면모를 들여다본 것으로 상당히 흥미 있는 것들이다.

▲‘두꺼운 벽의 방’(The Thick-Walled Roomㆍ1956)-전후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하는 일본군 하사관들의 옥중생활을 그린 것으로 이들의 회상을 통해 전쟁의 참상이 고발된다. 당시 이들보다 더 전쟁의 책임이 큰 대부분의 장교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았는데 코바야시는 이런 부당한 처사와 함께 일본의 군국주의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전쟁은 악’이라는 통렬한 반전영화로 전범 중에는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 코바야시는 한국인을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옥중에서 막 일어난 6.25동란이 거론되면서 한 전범이 “남과 북 중에 누가 먼저 상대방을 침략했는가”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라스트 신이 눈이 시큰해지도록 감동적이다.


코바야시는 전쟁에 졸병으로 끌려가 포로가 됐었는데 이로 인해 평생 전쟁에 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그는 이 영화와 ‘인간의 조건’ 외에도 일본판 ‘뉴렘버그 재판’인 기록영화 ‘도쿄 재판’도 만들었다. 그는 6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제국군대의 잔혹성을 직접 경험했는데 상관의 장교가 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전쟁에 대한 항거로 내내 졸병으로 지낸 평화주의자였다.

▲‘아 윌 바이 유’(I Will Buy Youㆍ1956)-브래드 핏이 나온 ‘머니 볼’을 연상케 하는 돈으로 매사가 해결되는 프로 스포츠계의 부패를 고발한 작품이다. 프로야구팀의 젊은 스카웃이 가난한 시골 출신의 고교 투수를 자기 팀에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리를 그린 영화다. 선수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금전적 도덕적 부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블랙 리버’(Black Riverㆍ1956)-6.25를 겪은 한국 사람들의 어두웠던 과거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은 전후 일본 판자촌 주민들의 삶과 바걸들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을 허물고 러브호텔을 지으려는 탐욕스런 판자촌 여주인과 판자촌 철거를 지휘하는 깡패 조(나카다이) 그리고 판자촌 주민 중의 한 사람인 대학생과 그를 사랑하는 순수한 식당 웨이트리스 등 인간 군상의 얽히고 설킨 얘기를 재즈음악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조는 웨이트리스를 사랑해 그녀를 겁탈하고 자기 애인으로 만드는데 이로 인해 순진했던 여자가 팜므 파탈로 변신,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를 갖춘다. 새파랗게 젊은 나카다이는 이 영화로 처음 큰 역을 맡았는데 판자촌 주민 중 한 사람으로 한국인 김씨가 나온다. 여기서도 코바야시는 한국인을 긍정적으로 그렸다.

▲‘유산’(The Inheritanceㆍ1962)-쿠로사와의 ‘상과 하’를 연상케 하는 스릴러 기가 있는 가족 드라마로 주인공 여자의 회상식으로 전개된다. 젊고 아름답고 현명한 야수코는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재벌회사 사장의 비서. 사장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소재를 모르는 각기 어머니가 다른 3명의 자기 자식을 찾으라고 비서진에게 지시하면서 사장의 젊은 트로피 와이프를 비롯해 사장의 측근들 간에 돈을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진다.

한편 사장이 자기 집에서 사무를 보면서 간병까지 하는 야수코를 정복하면서 야수코가 유산상속 드라마의 다크호스로 등장한다. 인간의 탐욕과 이를 동반하는 음모와 배신과 술수를 그린 좋은 드라마로 사장의 비서 중 한 사람으로 나카다이가 나온다. 쿠로사와의 영화음악도 작곡한 토루 타케미추의 재즈음악이 좋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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