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암 이기고 새로 시작, 지금이 내 삶의 제3막”

2013-07-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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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촛대 뒤에’ 마이클 더글러스

“암 이기고 새로 시작, 지금이 내 삶의 제3막”

리베라치(마이클 더글러스·왼쪽)와 그의 젊은 애인 스캇 토슨(맷 데이먼).

1970년대와 80년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라스베가스 무대를 주름잡았던 피아니스트 쇼맨 리베라치와 그의 젊은 동성애 애인 스캇 토슨(맷 데이먼)과의 파란만장한 관계를 그린‘큰 촛대 뒤에’(Behind the Candelabra)서 리베라치로 나온 마이클 더글러스(68)와의 인터뷰가 지난 6월23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최근 후두암을 이기고 새 삶을 찾은 더글러스는 큰 소리로 웃어가면서 유머와 농담을 섞어 활발하고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점점 더 매서운 눈초리를 한 아버지 커크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머리와 눈썹은 비록 잿빛이었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새 인생을 감사해 하면서 관대한 마음을 보여줬는데 대단히 건실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더글러스는 회견 후 기자에게 자신의 다음 작품의 촬영감독이 한국인이라면서 반가워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한 영화는 토슨이 쓴‘큰 촛대 뒤에: 리베라치와의 내 인생’(Behind the Candelabra: My Life with Liberace)이 원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매우 독특한 역이자 과감한 선정인데 소감은.

-이렇게 생생하게 생존했던 사람의 역을 맡기는 처음이다. 가능하면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전화위복이랄까 암에 걸려 치료하는 동안이 연습기간이 된 셈이어서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진짜 극적인 역으로 재미있었다.

*당신은 마치 일류 피아니스트처럼 연주를 하는데 진짜로 피아노를 쳤는가.


-난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처음엔 피아노 선생을 고용했으나 별무효과여서 내가 스티븐에게 영화에 쓸 리베라치의 연주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했다. 그가 맹렬한 속도로 부기우기를 치는 비디오를 골라 수십 시간을 계속해 관찰한 뒤 흉내를 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의 눈이 과거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동성애자 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그 예다. 내가 20년 전에 맷 데이먼의 지금 나이라면 과연 이 역을 맡았을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본 나이 먹은 숙녀가 내게 다가와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이젠 동성애를 사람들이 점점 더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은 최근 당신의 삶의 제3막을 맞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제1막은 제작자로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간 새’를 만들 때까지다. 제2막은 그 뒤 배우로서 활동할 때이며 제3막은 내가 암을 이기고 시작한 바로 지금이다. 난 병을 앓고 난 후 배우로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내 인생이 재충전된 것인데 그래서 지금 난 과거보다 다르고 또 도전적인 역들을 골라 즐기고 있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의 시초다. 제3막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커크가 현재 96세인 것을 보면 오래 갈지도 모른다.

*당신은 젊었을 때부터 동성애자 권익을 옹호했는가.

-난 늘 그랬다. 그리고 난 TV 시리즈에서 동성애자 형사로도 나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한다.


*리베라치는 보석을 매우 좋아했는데 당신과 캐서린(역시 배우인 아내 캐서린 제이타-존스)은 어떤가.

-캐서린은 큰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보석들을 좋아하나 난 시계와 결혼반지만 차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의 영혼 바닥으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느낌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양성해야 하며 또 자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핵무기 해제다. 바라는 것보다는 느리나 서서히 목표를 향해 진전하고 있다고 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좋은 순간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난 좋은 유머감각을 즐기는 것을 행복이라고 본다. 그래서 난 코미디 부문에 상을 주는 당신들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를 코미디를 인정하지 않는 아카데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나쁜 순간보다 좋은 순간들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내용 때문에 스튜디오가 아닌 케이블 TV HBO가 만들었는데 스튜디오들은 오히려 사회 현상에 역행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가.

-맞다. 어느 스튜디오도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국에서 개봉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우린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 스튜디오들은 ‘맨’자나 숫자가 붙은 영화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제작자였던 70년대는 이렇지 않았다. 그 땐 영화인들의 재능을 믿었다. 요즘 좋은 영화는 오히려 케이블 TV나 TV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재능 있는 각본가들이 자꾸 영화를 떠나 TV 쪽으로 가고 있다. 요즘 스튜디오들은 대회사들의 방계회사에 지나지 않아 영화인들은 고용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영화인들과 스튜디오 간에 전연 상호작용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리베라치를 만난 적이 있는가.

-잠깐 본 적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과거 한동안 팜스프링스에 살았는데 그 때 리베라치가 롤스로이스 컨버터블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 왔다. 해가 쨍쨍 내려 쪼이는 날이었는데 리베라치가 금목걸이에 금반지들을 끼고 차에서 내리자 그것들이 햇볕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뒤 난 아버지와 리베라치를 알던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리베라치는 매우 관대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젊은 배우들 중 누가 인상에 남는가.

-난 극장엘 잘 안 간다. 난 영화 만들기를 더 좋아하고 뉴스와 스포츠광이다. 영화는 수상 시즌에 DVD로 본다. 요즘 젊은 배우들 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제시 아이젠버그와 테이텀 채닝이다. 그런데 40대인 조지 클루니와 맷 데이먼에 이어 젊은 배우들 중 이들을 자리를 메울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간격이 크다. 많은 젊은 미국 배우들은 너무 섹스 심벌에 매어달리는 것 같다. 미국의 젊은 배우들 대신 요즘은 영국이나 호주의 젊은 배우들이 훨씬 나아서 그들이 미국 영화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베라치는 호화사치를 즐겼는데 당신은 어떤가.

-난 물질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캐서린은 안 좋아하지만 옷도 영화에서 안 쓴 것을 갖다 입는다. 난 샤핑을 안 한다. 난 물건보다 땅과 경치를 더 좋아한다. 아름다운 환경을 좋아해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이 내 사치다.

*좋아하는 이국적인 장소는 어딘가.

-남아메리카와 버뮤다와 셰이셸 군도 그리고 아프리카다. 난 아직 동양엔 못 가봤는데 아이들과 함께 그곳으로 여행할 예정이다.

*당신이 맷과 키스할 때 캐서린이 세트에 있었는가.

-아니다. 대신 맷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맷이 나와 키스를 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엄마, 미안해요, 엄마”라고 말하자 맷의 어머니는 “오 얘야 괜찮아”라고 아들을 달랬다.

*그럼 맷은 당신에겐 무얼 말했는가.

-나와 키스할 때마다 눈을 감고 나를 통해 캐서린과 키스한다고 상상한다고 하기에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어린 두 남매를 어떻게 키우는가.

-딜런은 열두 살이고 캐리스는 열 살이다. 딜런은 다이빙과 서핑을 좋아하고 또 배우가 되려고 한다. 캐리스는 승마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고 또 춤을 추는데 그 아이 역시 배우가 되려고 한다. 난 두 아이가 다 배우가 될 것을 확신한다.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숙제도 아는 대로 도와준다.

*당신에게 돈과 명성과 성공은 무엇인가.

-돈은 당신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조직을 후원하도록 돕는다. 명성이란 식당에 갔을 때 자리가 없어도 날 알아보고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성공이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확인이다.

*당신이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과 달리 할 일이라도 있는가.

-있다. 난 전처를 매우 좋아하나 그 결혼은 우리가 이혼 했을 때보다 10년 전에 끝났어야 했다. 내 전처는 훌륭한 여자이지만 우리의 결혼은 서로 영적으로 맞지가 않는 것이었다.

*이 역을 어떻게 얻었는가.

-스티븐과 함께 ‘트래픽’을 찍을 때였는데 느닷없이 그가 내게 다가와 리베차리 역을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난 처음에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사실임을 안 뒤론 매우 신경이 써져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꾸 날 더러 리베라치라고 놀려대기에 진짜로 스티븐에게 리베라치처럼 행동을 했더니 7~8년 후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암이 당신에게 남긴 좋은 영향은 무엇인가.

-하루하루를 깊은 존경심으로 맞는 것이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매일이 내 나머지 삶의 첫 날이다.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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