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 팔린 주택 3채 중 1채‘캐시 딜’

2013-06-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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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시장 여름 이상과열

▶ 올 들어 현금 거래 외국인들 주도 매물난·집값과 금리 급등까지 겹쳐 대출 받는 바이어 내집 마련 난망

LA 팔린 주택 3채 중 1채‘캐시 딜’

중국인 에이전트가 타지에 있는 고객에게 전송하기 위해 매물을 촬영 중이다. 지난해 현금 거래 주도세력은 투자자들이 많았던 반면 올해는 외국인들도 현금 거래에 가세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불과 일주일 만에 50여건의 오퍼가 제출됐다’‘오픈 하우스에 수백명이 다녀갔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젠 기삿거리도 아니다. 주택시장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믿기 힘든 과장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부동산 중개업체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주택 매물 태부족, 가격 급등, 모기지 금리 반등 등 3가지 현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주택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계절적으로 주택거래가 늘어나는 여름방학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올 여름 주택시장은 그 어느 해보다‘폭염’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두드러진 과열 현상 중의 하나는‘현금거래’ 급증 현상이다. 보유현금을 전부 쏟아 부으면서까지 주택구입에‘올인’하는 바이어가 많은데 이에 대한 부작용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례 #1: 장기전 대비

지난해 주택 구입을 계획했다가 자금사정 등이 여의치 않아 올해로 주택 구입을 미뤘던 한인 H씨. 자영업자인 H씨는 융자 중개인의 충고대로 오로지 주택을 구입할 목적으로 지난해 세금보고도 ‘두둑이’하며 올해 안에 주택 구입을 꿈꿔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올 들어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동시에 매물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H씨가 구입하려는 가격대에는 이른바 ‘캐시 바이어’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모기지 대출을 받아야 하는 H씨의 주택 구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부 매물의 경우 캐시 바이어들 간 구입경쟁을 벌이기까지 해 H씨는 오퍼 제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달 받은 매물 정보지에 셀러가 ‘캐시 오퍼’만을 받겠다는 내용을 노골적으로 제시한 것을 본 H씨는 허탈감에 쓴웃음뿐이다.

지난해 무리해서라도 주택을 구입했어야 하는 후회를 피할 수 없는 H씨는 현재 임대계약을 조금 더 연장하며 주택 구입 ‘장기전’에 돌입할 태세다.

■사례 #2: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

지난해 말부터 주택 구입을 계획을 세운 한인 Y씨 부부는 현재 매물 샤핑을 잠시 보류 중이다. 예정대로 지난해 말 첫 아이를 순산한 부부는 아이에게 선물로 첫 주택을 장만해 포근한 ‘아기방’을 꾸며주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올 초부터 매물이 나오자마자 부지런히 보러다니고 현재까지 10건이 넘는 오퍼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셀러가 캐시 오퍼를 선택했다’는 식이었다. 원하는 집을 구입할 때까지 잠시 처갓집에 머물기로 한 부부는 벌써 수개월이 지나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을 사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자 부부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마음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시장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LA, 3건 중 1건 현금거래


두 한인 모두 첫 주택을 장만하려는 바이어들이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매물 부족 현상과 캐시 바이어들 탓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현금 거래를 의미하는 이른 바 ‘캐시 딜’은 현재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가주,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에서 특히 심하게 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LA 지역에서 거래된 전체 주택 3채 중 1채는 ‘캐시 바이어’의 소유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6년 전 10채 중 1채에 불과했던 LA 지역의 현금 주택거래 비율이 주택시장 회복과 동시에 급증하는 추세다.

마이애미에서는 캐시 딜 현상이 더욱 극심했다. 1분기 중 매매된 전체 주택 중 약 65%가 현금으로 지불된 거래로 6년 전보다 약 4배 이상 증가했다.

불과 2~3년 전 현금 거래의 경우 매매가격을 깎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현금 구매자 간에도 구입경쟁을 벌이며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이어가 워낙 귀한 몸이어서 현금을 제시하는 바이어에게는 가격을 낮춰주는 셀러가 많았지만 이젠 상황이 180도 변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LA 지역에서 올해 현금으로만 거래된 주택의 중간가격은 약 35만1,000달러로 2009년보다 무려 12만달러나 치솟았다. 특히 현금으로 거래되는 주택의 가격대가 40만달러 미만의 중저가대 매물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도 있다. 같은 기간 전체 주택 거래의 중간가격은 약 41만달러로 약 8만5,000달러 올랐다.

■이 많은 돈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

중저가대 주택매물이 대부분 현금 바이어들에 의해 ‘싹쓸이’되는 현상을 접하면 대부분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나’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같은 반응은 바이어나 부동산 에이전트나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만 해도 현금 바이어들의 대부분은 기관투자자 등 전문 부동산 투자자 등이 주를 이뤘다. 주로 현금거래를 통해 주택매물을 사들이는 기관 투자가들은 지난해 수십억달러를 쏟아 부으며 약 13만8,540채의 단독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리얼티 트랙).

리얼티 트랙은 또 올해 1분기 기관투자가들이 약 3만2,355채의 단독주택을 사들인 것으로 추산중이다. 기관투자가들의 올해 주택 구입량(연율 환산)은 지난해 구입량에 비해 소폭 감소했지만 매물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전체 거래 주택에 차지하는 비율은 약 3.5%로 지난해(3%)보다 조금 늘었다.

올 들어 현금 거래 주도세력으로 외국인 바이어들이 급부상중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내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기 힘든 외국인들은 주로 현금 거래를 통해 주택을 구입해 왔지만 최근 이같은 비율이 크게 늘고 있는 것.

외국인들의 주택구입 선호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멕시코인들은 주로 미국 남서부쪽에 주택을 구입하고 중국인을 필두로 한 아시아인들은 남서부 중에서도 가주에 집중 구입하는 경향이다. 미국 내 주택 구입 규모가 가장 큰 국가인 캐나다인들은 대부분 플로리다 ‘애호가’이며 브라질인들도 플로리다에 많은 주택을 구입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미국 동부에 위치한 주택 구입에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내 체류신분을 가진 외국 이민자들 역시 현금 거래 비율이 높다. 자영업 종사 비율이 높은 이민자들의 경우 ‘깐깐한’ 모기지 대출보다 현금 거래를 통한 주택 구입을 선호하고 있다.

이밖에도 기존 주택의 모기지 대출을 ‘청산’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에 의한 현금 거래 비율도 높다. 모기지 대출 상환 뒤 주택을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거나 홈 에퀴티 융자를 통해 목돈을 마련한 은퇴 연령층이 자녀 출가 후 작은 규모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현금 주택거래에 나서거나 또는 자녀 주택 마련을 위해 현금으로 집을 사려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바이어에게 불리한 거래

현금 거래가 늘고 비정상적인 과열 경쟁 양상이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런 블롬퀴스트 리얼티 트랙 부대표는 “가주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과열 현상을 보면 불과 6~7년 전 있었던 비정상적인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주택시장의 과열 현상을 놓고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품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셀러나 바이어 등 주택시장 실수요자들에게는 주택시장 상황을 진단하기 보다는 현재 상황이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를 판단하는 혜안이 더욱 필요하다.

‘캐시 바이어’들에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이어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위험부담이 높은 주택 구입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만 오르면 된다’는 생각에 위험천만의 주택 구입이 만연 중인데 일부 부동산 중개인들은 비정상적인 행위로 자제를 요구한다.

주택 구입 때 바이어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조항은 크게 세 가지로 대출, 감정가, 주택 상태와 관련된 조항이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바이어는 주택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금 거래에 나서는 바이어들은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묻지 마 식’ 구입에 나서는 데 자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바이어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은 바로 ‘레버리지 효과’다. 거주 목적의 주택 구입 때에도 투자효과를 고려해야 하는데 현금 거래 때는 금융투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레버리지 효과는 투자자가 투자금을 일부 마련한 뒤 대부분 더 많은 자본을 은행 등 금융 기관으로부터 차입해 투자에 나설 때 기대되는 이익 효과다. 특히 요즘처럼 이자율이 낮을 때에는 레버리지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보유현금을 주택 구입에 전부 지출하면 낮은 이자율을 활용한 기타 투자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과열현상의 주택시장에 셀러에게도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집을 내놓기만 하면 팔리고 그것도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팔리지만 적절한 출구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면 주택 처분 후 오히려 난감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집을 팔기는 수월해도 구입은 만만치 않아 자칫 장기 세입자 상황에 처하거나 원치 않는 주택 구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집을 처분해야 함에도 내놓지 못하는 셀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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