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와이제도 1850년대까지 샌드위치라 불려

2013-06-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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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따라 말따라

오늘날의 우리는 ‘해가 지지 않는나라’ 하면 흔히들 대영제국을 떠올리지만 16, 17세기께에는 스페인 제국을 떠올렸던 말이었다. 1555년, 부친인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로 불렸다)로부터 네델란드와 스페인 왕국과 아메리카 대륙을 물려 받았던 필립 2세(스페인어로는 펠리페 2세, 필리핀이란 이름 역시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후에, 포르투갈 왕위까지 획득하였다. 이는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있던 식민지들, 즉 아메리카의 브라질과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에 걸쳐 있는 포르투갈의 방대한 식민지가 펠리페 2세의대제국과 합쳐진다는의미 이기도 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로 스페인의세력이 크게 증가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노골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해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유럽의 갈등은 1588년 5월을 기점으로, 스페인이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하게 되면서 영국해군이 해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영국의 해상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후, 1778년부터 시작된 영국인제임스 쿡 ‘James Cook’ 선장은 태평양을 세 번에 걸친 항해를 통하여, 호주 동해안에 도달하였으며, 하와이 제도를 발견하였고, 뉴펀들랜드와 뉴질랜드의 해도를 제작하는 커다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첫 번째 항해에서그는 사상 처음으로 괴혈병 ‘비타민이 모자라 생기는 병’에 의한 사망자를 내지 않고 세계일주를 달성했으며태평양을 남쪽 끝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탐험하여 영국의 식민지 개척에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 당시, 세 번째 항해의 공식적인 목적은 북극해를 빠져 나와 태평양과대서양을 잇는 북서 항로를 탐색하는것이었다.

‘Resoulution; 리솔류션 호’와 ‘Discouvery;디스커버리 호’ 지휘봉을 잡은 쿡은 북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항해하던 중 1778년, 하와이 제도를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어 카우아이섬에 상륙하였다. 그는 자신을 후원해준 대영제국의 해군 대신이었던 샌드위치 백작‘ 포커 게임을 좋아하던 백작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빵 사이에고기나 야채를 넣어 먹었는데 오늘날의 샌드위치의 기원이 되었다’ 의 이름을 따서‘ 샌드위치 제도’ 라고 이름붙였는데 쿡의 탐험 항해의 중요한후원자이기도 했던 샌드위치 백작의이름 아래 하와이 제도는 1850년 대까지 샌드위치 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후, 북아메리카의 서해안을 탐구하기 위하여 쿡은 북동쪽으로 항해하였고, 지금의 밴쿠버 아일랜드의 노코타 사운드 안에 유코트에 있는 파스트네이션즈 마을 근처까지 항해하였다.

단 한 번의 항해로 쿡은 미국의 북서부 해안에 있는 대부분의 해도를제작했으며, 알래스카의 곳곳을 파악하여 서쪽에서 비투스 베링등의 러시아인 지역과, 남쪽의 스페인 식민지인캘리포니아 사이의 북 태평양의 해안지역(오늘날의 오리건, 워싱턴주와 캐나다 등)을 탐사하였다. 그로 인해 영국은 북미 대륙은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 인도, 홍콩 등의 식민지를 차례로 건설하면서 18세기, 19세기에는‘해가 지지 않는 나라’ 는 칭호를 스페인으로부터 이어 받게 되었던것이다.

John Kim의Spanish Class(323)346-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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