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국-프랑스, 오하이오 강 주변 영토 싸움

2013-05-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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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캘리포니아로 가는길 / 프렌치 인디언 전쟁

유럽에서 일어난 7년 전쟁이란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가 동맹을 맺어 프로이센-하노버-영국의 연합에 맞섰던 전쟁을 말한다.

유럽에서 벌어진 이 7년 전쟁을 포메라니안 전쟁으로도 불리는데, 이 전쟁은 세계 각 식민지에도 불똥이 튀어아메리카와 인도에서도 전쟁을 치렀다. 오늘날의 영국과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을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War, 1755~1763년)은 유럽에서 7년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오하이오 강 주변의 인디언 영토를 둘러싸고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 전쟁으로 영국과프랑스 모두 인디언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영국 측에서 볼 때 프랑스가 인디언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디언 전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북미 식민지 전쟁의 참전국 중 가장 큰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전쟁에 진프랑스는 미시시피강 서쪽의 루이지애나를 동맹국 스페인에 할양했다.

이 때, 스페인은 영국에 플로리다를할양한 대가로 쿠바의 아바나(Havana;스페인어의 H는 묵음으로 발음을 안 한다.)를 손에 넣었으며 카리브해에서 프랑스의 식민지는 생피에르미클롱만 남기고는 모두 철수하고 말았다. 따라서 영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절반을 식민지 세력의 지배로 굳힐 수가 있었다.

1755년의 대영제국은 이 7년 전쟁에 대비하여 군비를 강화하고 있었던해였다. 이 시기에 제임스 쿡이라는사람이 해군 말단사병으로 입대하여불과 2년 후인 1757년에 국왕이 승선하는 함선을 조종하게 되는 시험에합격하여 주목을 받던 때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에 영국은 패전을 거듭하였으나, 1757년 전시 내각의 대피트의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서서히 전황을호전시켰으며, 특히, 영국의 해상 제패는 영국 측 승리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1763년 2월10일 파리에서 영국과 프랑스 간의 조약 체결이 이루어진결과 프랑스는 해외 이권의 일부는 유지하지만 해외 식민지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그 전쟁을 끝으로 해외식민지의 영국과 프랑스의 다툼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7년 전쟁에서 제임스 쿡은 1759년, 퀘벡 포위전에 참가했었는데 그의유능한 지리 조사 및 해도 작성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제임스 쿡은 세인트로렌스 강 하구의 측량과해도 작성을 맡아 울프 장군의 기습상륙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뉴펀들랜드의 복잡한 해안선 지도를 작성하는 등 1760년대에도 쿡의능력이 활용되었다. 1763년과 1764년에 북서부에, 1765년 및 1766년에는브린 반도와 레이 케이프 사이의 남해안 1767년에는 서해안을 측량했다.

쿡의 5년에 걸친 조사로 뉴펀들랜드 해안의 대규모의 정확한 지도가처음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경험은 쿡의 실지 조사에 정통할 기회가 주어졌고, 동시에 영국 해군성과 영국 왕립학회에서는 그를 인재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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