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인자 역 연기하느라 진이 다 빠졌어”

2013-05-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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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에너지 방출 감정이 정화된 느낌/살인자와 가장이라는 이중적 캐릭터 흥미

▶ `아이스맨’ 마이클 섀논

20여년간 100여명의 사람을 살해한 뉴저지의 프로 킬러 리처드 쿠클린스키의 삶을 그린 실화 스릴러‘아이스맨’에서 쿠클린스키 역을 맡은 성격파 배우 마이클 섀논(39)과의 인터뷰가 지난달 27일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서 있었다. 짙은 감색 정장에 타이를 맨 매서운 눈초리의 섀논은 거의 인상을 쓰듯이 심각한 표정이었는데 처음에는 잔뜩 조인 듯이 긴장감을 안 풀면서 직선적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미소는 약간 비웃는 듯한 것으로 사람이 너무 강렬해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감이 풀린 듯이 한두 마디 농담까지 하면서 인터뷰를 잘 견디어냈다. 영화는 앤소니 브루노의 소설‘아이스맨: 냉혈 살인자의 실화’와 HBO-TV의 옥중의 쿠클린스키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평 참조. <박흥진 편집위원>

*살인자 역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 진이 빠질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가 자고만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면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가 있어 감정의 정화작업을 경험했다.


*역을 위해 얼마나 연구했는가.

- HBO의 20시간짜리 인터뷰를 수차례 봤다. 쿠클린스키와 같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는데 감독 에이리엘 브로멘이 거짓말이 많으니 읽지 말라고 해 중단했다. 쿠클린스키는 매우 신비한 자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지를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당신은 얼굴 모양을 여러 번 바꾸는데 세월의 변화를 따른 것인가.

- 주로 얼굴의 수염 모양을 여러 번 바꿨다. 구레나룻과 콧수염 그리고 염소 모양의 턱수염으로 바꿔가면서 일종의 시대변화를 묘사했는데 수염에 맞게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70년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쿠클린스키는 자기 가족에 대해 위협하는 자가 있으면 분노에 못 견뎌 죽여 없앴는데 당신을 분노로 들끓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도 누군가 내 가족을 괴롭히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난 어린 딸이 있어 쿠클린스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나도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참지 못할 것 같다.

*쿠클린스키는 누군가 자기를 비난하면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을 처리했는데 이는 단순히 그가 자기 성질을 조절하지 못해 행한 짓이라고 보는가.


- 바로 그 점이 그의 내적 허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내적으로 너무나 상처가 많아 누군가 자기를 비난하면 참지를 못한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자신 말고는 누구도 자기를 비난하는 것을 참지 못하게 마련이다.

*영화가 얘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 쿠클린스키처럼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은 나중에 흉악범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뜻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영화는 그의 범죄자와 가장으로서의 이중생활을 탐구했다.

*당신은 주로 사이코 역을 많이 하는데 거기서 빠져 나올 의향은 없는가.

- 그 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난 돈만 준다면 무슨 역이라도 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사실 난 그렇게 많이 사이코 노릇을 하진 않았다. 내 역은 매우 다양한 인물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내게 주어지는 역을 맡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난 불평할 일이 하나도 없다.

*당신은 영화에서 후에 당신 부인이 된 데보라(위노나 라이더)에게 “당신은 나탈리 우드 보다 더 예쁘다”며 구애를 했는데 실제로 당신의 구애의 말은 무엇인가.

- “내 아내가 되어주겠소”가 어떨까. 그런데 난 결혼을 했으니 이 말은 안 어울리고 클래식 구애의 말인 “아이 러브 유 베이브”가 좋겠다.

*당신은 연기파로 유명하면서도 출연하는 영화들이 소품이어서 대중이 잘 알지를 못하는데 좌절감이라도 느끼는가.

- 별로 신경 안 쓴다. 난 결코 명성을 바라지 않았다. 연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난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내 친구들 중엔 유명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유명세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당신은 유머감각이 있는데 로맨틱 코미디에 나올 생각은 없는가.

- 요즘은 과거처럼 좋은 로맨틱 코미디 각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번은 좋은 각본을 발견해 거의 역을 맡을 뻔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로맨틱 코미디 수퍼스타에게 역을 뺏겼다. 한 번 걸친 ‘미친 친구’라는 옷을 벗기란 쉽지가 않다.

*어떻게 해서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 뜻밖의 일이었다. 난 전에 쿠클린스키에 대해 전연 몰랐다. 그리고 난 마피아 영화에 관심이 없어 이 영화가 단순한 마피아 영화였다면 안 나왔을 것이다. 내가 역에 반한 것은 쿠클린스키의 살인자와 가장이라는 이중생활 때문이었다. 쿠클린스키는 매우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집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는 이런 취향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난 거기서 매력을 느꼈다.

*당신은 영화에서 살인자가 되기 전 포르노 영화를 더빙하는 것이 직업이었는데 실제로 포르노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언제인가.

- 젊었을 때 LA에 살 때였다. 그런데 가짜로 하는 섹스를 보자니 지루하고 재미가 없더라.

*당신은 영화에서 데보라에게 당신의 직업을 디즈니 만화영화를 더빙하는 것이라고 속이는데 디즈니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누구인가.

- 피터 팬이다.

*쿠클린스키가 체포된 뒤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됐는가.

- 처음에는 토크쇼 등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HBO의 기록영화가 방영된 뒤로 종적을 감췄다. 아직도 데보라는 자기 신분을 감추고 있으나 두 딸은 다르다. 둘은 이 영화도 봤다. 난 29일에 있을 프리미어에서 그들을 만날 예정이다.

*쿠클린스키는 자기가 통제 못하는 성질 때문에 살인자가 됐다고 보는가.

- 처음에 그는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인다. 그는 살인이 나쁜 짓이라고 깨닫고 자제하려고 했지만 이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음을 알고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는 똑똑하지도 못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좋은 기회도 만나질 못해 결국 살인자가 된 것이다.

*쿠클린스키는 어떻게 해서 살인을 정당화 했다고 보는가.

- 그는 자주 내가 그들을 안 죽였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죽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갱들이었다. 그것이 살인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당시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쉽게 이해하기란 힘들다.

*이 영화가 살인자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는가.

- 살인자의 영화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 하긴 쉽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살인과 복수와 광기의 얘기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다. 그것을 통째로 무시한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쿠클린스키를 모방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대낮에 길이나 공원에서 살인을 하는 데도 목격자가 없는가.

- 순식간에 해치우기 때문이다. 쿠클린스키의 범죄 파트너인 미스터 프리즈의 경우 길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옆으로 지나가면서 청산가리로 순식간에 처치해 아무도 낌새를 못 챘다.

*당신은 연극배우이기도 한데 무대가 그립지 않은가.

- 난 사실 지금도 꾸준히 연극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뉴욕에서 두 편의 연극에 나왔고 올 여름에는 시카고에서 샘 쉐파드의 연극에 나올 예정이다. 내게 있어 연극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난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배우가 되기로 생각했는가.

-16세 때로 시카고에서 연극을 했는데 그 뒤로 연기를 중단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쿠클린스키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면 무엇을 물어보겠는가.

- 그를 인터뷰한 소설작가를 만났는데 그는 쿠클린스키가 무시무시한 동물적 인간이었다고 알려 줬다. 상대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질문을 한다면 “당신이 어릴 때 달리 자랐더라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을 것이다. 사실 그는 영화 끝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쿠클린스키를 처음 살인자로 고용한 데메오는 어떻게 됐는가.

- 다른 갱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안다.

*처음부터 당신에게 쿠클린스키 역이 주어졌는가.

- 아니다. 감독이 처음 내게 접근했을 때는 나를 크리스 에반스가 맡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살인을 하는 미스터 프리즈로 쓸 생각이었다가 마음을 바꿨다.

*어떻게 해서 쿠클린스키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사실 그는 자기 일을 후회도 하고 또 느낌도 많은 사람이었다. 이런 그가 잔인한 살인을 서슴지 않고 자행한 것은 자기가 죽이는 사람을 어릴 때 자기를 학대한 아버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망령을 처치하겠다는 집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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