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화 탈취범 기억상실 `그림은 어디에?’

2013-04-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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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와르 형식 심리스릴러 관객을 최면상태 빠뜨려

겉으로는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와 그의 상대자인 갱스터 그리고 범죄와 두 남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팜므 파탈과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서술방식 및 냉소적이요 아이로니컬한 종말 등 전형적인 필름느와르의 형식을 빌린 섹스와 잔인한 폭력과 한탕이 있는 심리스릴러다.

제목처럼 관객을 혼수상태에 빠뜨려 놓는 일종의 심리게임의 영화인데 플롯이 엿가락처럼 꼬인 데다가 수 없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바람에 영화의 내용이 과연 현실인지 아니면 주인공이 빠진 혼수상태 속의 환상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속도감 있고 연기들도 좋고 섹스와 액션과 스릴을 마구 섞어놓은 스타일 멋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플롯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데다가 지나치게 재주를 부려 과함이 부족함만 못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영국의 대니 보일인데 그는 관객을 영화의 주인공처럼 몽환 상태로 몰아넣겠다고 작심한 듯이 현실과 잠재의식을 수 없이 드나들면서 보는 사람을 혼란케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을 무시하고 최면상태에 선선히 빠진다는 심정으로 보면 아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처음에 런던에서 열린 한 미술경매장을 갱스터들이 습격, 고야의 그림 한 점을 강탈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사건의 내통자는 경매장의 종업원으로 도박중독자인 사이먼(제임스 매카보이).

그런데 그림을 들고 도주하던 사이먼이 머리에 타박상을 입으면서 그림을 어디에다가 숨겨놓았는지를 잊어버린다. 이에 화가 난 갱 두목 프랭크(뱅상 카셀이 일촉즉발의 연기를 한다)가 사이먼을 참혹하게 고문하나 결과는 마찬가지.
이에 프랭크는 사이먼을 최면치료사에게 보내기로 하고 사이먼에게 치료사를 고르라고 한다. 사이먼이 고른 사람이 지적이요 벨벳의 감촉을 지닌 음성의 섹시한 엘리자베스(로사리오 도슨이 전면 나체를 보여주면서 짙고 뜨거운 연기를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이먼은 엘리자베스를 골랐을까.

엘리자베스가 사이먼을 최면에 걸면서 영화는 대부분 사이먼의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의 형식을 빌려 서술된다. 그런데 과연 사이먼의 이 기억이란 것이 사실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사이먼이 왜 자기를 찾아온 지를 파악한 엘리자베스는 사이먼에게 자기의 최면으로 고야의 그림이 있는 곳을 기억하게 되면 프랭크를 따돌리고 둘이 그림 판 돈을 나눠 가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사이먼과 엘리자베스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과연 엘리자베스는 정말로 사이먼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프랭크와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두 남자를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

엘리자베스가 사이먼을 최면에 걸 때마다 사이먼은 매번 자기 마음속의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위험이 커지면서 폭력적이 된다.

그리고 그는 살인까지 한다(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꿈일까). 시간이 갈수록 보일은 자기가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중심을 못 잡고 횡설수설하는 식이다. 끝이 기차다. 역동적인 전자음악도 좋다.

R.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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