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대 Portola 가주지사와 몬트레이

2013-0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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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1770년5월 24일에 Portola 주지사와 탐험대가 마침내 몬트레이(왕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은 1602년 탐험가 Sebastian Viscaino에 의해서 지어졌는데 그는 자기를 후원해 준 스페인 부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에 도착했다.

1차 탐험 때와는 달리 맑은 날씨 아래 그렇게 찾아다니던 소나무만을 제대로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오늘날의 몬트레이 반도 내의 Pacific Glove Point에 위치해 있으며 Point Pinos Lighthouse라는 작지만 앙증맞은 등대가 서있는 바로 그 장소이다. Pinos는 소나무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인근 해안에서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산카를로스호와 산안토니오호, 두 척의 배에서는 몬트레이 이주자와 건축 기술자 그리고 군인들이 농사기구와 건축용 자재와 연장들, 인디언을 위한 선물 등의 물자를 내리고 있었다.


몬트레이는 공식적으로 1770년 6월3일, Mission San Carlos Borromeo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 그리고 요새가 함께 건설되었다.

요새 건설을 마치자 제1대 캘리포니아 주지사 Portola는 주지사 자리를 Pedro Fages에게 넘기고 1776년 지금의 멕시코 푸에블라 지역의 주지사로 옮겨 근무를 하다가 1784년 스페인으로 돌아갔으며 그 후, 2년 뒤인 1786년 10월에 스페인에서 일생을 마쳤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탐험대를 이끌었으며 캘리포니아 최초의 주지사였던 그의 이름은 그가 탐험했던 오늘날의 캘리포니아의 해안 길을 따라 남겨졌으며 그가 탐험했던 길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오늘날에도 그를 추모하는 갖가지 기념비가 세워져 Portola라는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한편 Portola로부터 자리를 물려 받은 Pedro Fages 제2대 주지사는 1770년 이후 국제분쟁 지역인 지금의 San Francisco 지역을 비롯하여 북쪽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였다. Pedro Fages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군대관련 사업이 우선적이고 그 다음이 교회 사업이라는 관료주의 군인 출신 정치가였다.

그래서 세라 신부와 불화가 잦았는데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불거진 교회와 군대의 권력다툼의 근본적인 불씨는 Serra 신부와 Pedro Fages 주지사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Serra 신부와 Pedro Fages 주지사는 멕시코시티로 불려가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Pedro Fages가 주지사 자리를 사임하고 1774년 Fernando Rivera y Moncada에게 주지사를 넘겨주게 되었다(그 후, Pedro Fages는 1782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임명되어 몬트레이로 돌아와 1789년까지 주지사 자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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