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930년대 프랑스,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

2013-02-01 (금)
크게 작게

▶ 안개 낀 부두 (Port of Shadows) ★★★★½(5개 만점)

1930년대 프랑스,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

숙명의 두 연인 장과 넬리는 불가능한 현실도피의 꿈을 꾼다.

시적 사실주의 흑백영화
장 가방·미셸 모르강 주연

지난 1930년대 프랑스 영화계의 한 흐름이었던 시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1938년산 흑백영화로 염세적인 분위기가 자욱한 안개처럼 작품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시적 사실주의란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덮은 당시 프랑스인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서민층의 각박한 일상과 함께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이중성을 담고 있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파리의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들의 도시 드라마로 매우 어둡고 염세적이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저주 받은 사랑을 하다가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필름 느와르와 비슷하다.


이 영화에는 시적 사실주의의 대표적 스타였던 얇은 입술에 과묵한 코주부 장 가방과 맑고 깊은 호심 같은 눈을 가졌던 미셸 모르강이 나오는데 둘의 사랑과 현실 도피에의 동경이 아름답도록 절망적이다.

안개와 음습한 기운과 불길한 분위기를 찍은 촬영이 숨 막히도록 몽환적인 영화는 군모를 삐딱하게 쓴 탈영병 장(장 가방)이 안개가 자욱한 비 내리는 밤 지나가는 트럭을 세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과 트럭운전사는 항구도시 르 아브르로 가다가 도중에 길 잃은 개 키키를 주워 태운다.

장은 르 아브르에서 가짜여권을 구해 베네수엘라로 튀어 새 인생을 살아본다고 이 곳에 온 것. 고스트 타운과도 같은 르 아브르는 짙은 안개에 갇혀 있는데 항구에 정박한 검은 색의 거대한 배는 이상향으로 가는 배라기보다 노예선을 연상케 한다.

장은 부둣가의 싸구려 인간들이 드나드는 판잣집 술집에서 역시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17세난 넬리(모르강)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장은 투명한 비닐 레인코트에 베레모를 쓴 넬리에게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소”라고 사랑의 언어를 건넨다. 그러나 인생 낙오자인 장과 저 세상 여자 같은 모습과 분위기를 지닌 넬리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극의 종말을 품고 있는 것.

장은 넬리를 위해 그녀를 우리 속 짐승처럼 간직해 온 늙은이 자벨(미셸 시몽)을 살해하고 배가 정박한 항구로 가다가 뒤쫓아 온 갱스터의 총에 맞아 죽는다. 키키가 장을 찾아 텅 빈 거리를 뛰어 달리는 마지막 장면이 가슴을 친다.

이 영화는 철저한 염세적 분위기 때문에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의 괴뢰정권 비시 정부로부터 “프랑스가 전쟁에 진 것은 ‘안개 낀 부두’ 때문”이라는 엉뚱한 비판을 받았었다. 그래서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멋진 배우들과 촬영 그리고 음악과 함께 문학적인 것이 시인이자 각본가인 자크 프레베르의 각본. 그와 마르셀 카르네는 역시 장가방이 나오는 또 다른 시적 사실주의 영화인 ‘새벽’과 마르셀 마르소 주연의 ‘천국의 아이들’도 함께 만들었다.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장이‘ 우리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이라 부른 장 가방은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프랑스 영화의 동의어와 같았던 배우였다. 그는 40여년간 배우생활을 하면서 ‘금괴에 손대지 마라’와‘ 지하실의 멜로디’ 등 많은 갱영화에도 나왔다.

‘안개 낀 부두’가 Rialto에 의해 새로 프린트돼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과 플레이 하우스 7(673 이스트콜로라도, 패사디나)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