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 라덴 살해작전 영화 `감독상 후보 탈락’ 논란

2013-0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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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린 비글로는 과연 정치적 논란의 희생자인가. 지난 10일 발표된 아카데미의 2012년도 각 부문 베스트 후보 발표에서 비글로의 빈 라덴 살해작전을 그린‘제로 다크 서티’가 작품상 후보에는 올랐으나 비글로는 막상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되면서 할리웃에서는 지금 비글로는 워싱턴의 희생자라는 말이 왁자하니 나돌고 있다. 이로써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 작품상 등 총 12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스필버그의‘링컨’에 맞서 가장 강력한 작품상 수상작으로 꼽히던‘제로 다크 서티’가 작품상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가 됐다. 감독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영화가 작품상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문데 과거 이런 경우는 지난 1989년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된 호주의 브루스 베레스포드가 만든‘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작품상을 받은 것이 가장 최근의 케이스다.

아카데미 영화제 각부문 수상후보 발표
`제로 다크 서티’ 캐슬린 비글로 제외돼
고문 관련 정치적 공방에 `희생양’ 우려

‘제로 다크 서티’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것은 CIA 요원이 빈 라덴의 거처를 알아내기 위해 알카에다 요원에 대해 워터보딩 등 여러 가지의 고문을 하는 장면 때문이다. 영화는 이로 인해 CIA는 빈 라덴의 연락책의 신원을 알아내고 이어 빈 라덴의 거처마저 알아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만들 때부터 비글로와 각본가인 마크 보알(둘은 지난 2010년 ‘허트 라커’로 각기 오스카상을 받았는데 비글로는 오스카 사상 감독상을 받은 최초의 여자. 그리고 보알은 이번에도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이 CIA로부터 국가 기밀을 열람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는 구설수에 올랐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미 연방 상원정보분과위 위원장과 같은 위원회 소속 존 매케인 등이 “고문장면은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고문으로 빈 라덴의 거처를 알아냈다고 국민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면서 영화의 배급사인 소니 측에 ‘영화가 허구’라는 자막을 첨가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 구설수에 말려들기를 꺼려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이 영화를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서 제외시킬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았었는데 그런 화는 면했지만 비글로는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비글로와 함께 작품상 등 모두 7개 부문에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아고’의 감독 벤 애플렉(영화의 주연이기도 하다) 역시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됐는데 이 역시 영화가 지난 1979년 이란 시민들에 의해 점령당한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사건을 다룬 정치적 내용이어서 애플렉이 탈락됐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아고’와 애플렉은 지난 13일 거행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기 작품(드라마 부문)과 감독상을 탔다.

나이 먹은 회원들이 주를 이루는 아카데미는 논란에 휩싸이기를 싫어하는데 특히 워싱턴과의 마찰을 아주 꺼려하고 있다. 따라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상원 정보분과위의 맹렬한 공격을 받은 ‘제로 다크 서티’의 감독 캐스린 비글로의 오스카상 후보 탈락은 정치적 논란의 제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편 워싱턴의 공격에 함구하고 있던 비글로는 지난 15일 LA타임스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자신의 영화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비글로는 성명에서 “빈 라덴 추적을 묘사한 어떤 부분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고문은 미국의 9.11 사건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대응의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이 탁월한 수사력에 의해 발견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다 알다시피 빈 라덴 수색작전 초기에 고문이 사용됐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것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얘기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비글로는 또 “미국의 대 테러정책과 그것의 행사에서 사용된 고문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면서 “내 영화를 비판하기보다는 고문이라는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실시하라고 명령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보다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에이미 패스칼 소니 공동회장도 최근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해 반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에드 애스너 등 일부 보수파 배우들을 겨냥해 “예술가의 표현의 권리를 처벌하는 것은 매우 혐오스런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제 ‘제로 다크 서티’가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부분은 영화에서 근 10년간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여 CIA 요원 마야 역을 한 제시카 채스테인. 채스테인은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연상(드라마 부문)을 탔는데 그의 강력한 라이벌은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에 나와 역시 골든 글로브 주연상(코미디/뮤지컬)을 탄 제니퍼 로렌스.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한 동정표가 과연 채스테인에게 쏠릴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제로 다크 서티’는 지난 주말 개봉을 전국적으로 확대, 주말 3일간 총 2,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호조를 보였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것 같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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