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니까 인생이다’

2013-01-1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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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정 희 논설위원

새해 벽두에 좋지 않은 소식이 주목을 끌었다. 스타 야구선수였던 조성민씨가 지난 6일 자살했다. 20대였던 1990년대, 배우 뺨치는 외모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로 펄펄 날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던 그가 나이 마흔에 남의 오피스텔 욕실에서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톱스타였던 전 부인 최진실씨와 그 동생인 가수 최진영씨의 연이은 자살과 겹치며 충격을 더했다. 특히 그들이 부부로서 이 땅에 남긴 어린 남매가 감당해야 할 고통에 많은 사람들은 가슴 아파했다.

자살은 근본적으로 정신의학적 문제이지만 그렇게만 보기에 한국의 자살률은 너무 높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동화와 영화로 인기를 모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작품이 있다. 24시간 대낮같이 불을 밝힌 공간에서 밤 없이 낮만 사는, 끊임없이 사료 먹고 알만 낳는 양계장 닭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잎싹은 그런 강요된 인공의 환경을 탈출해 자연으로 나간다. 자연 속에서 암탉은 자유를 맛보며 그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기쁨을 맛보며 그에 따른 슬픔을 감수한다. 희로애락이 번갈아 찾아드는 자연스런 삶의 모습이다.

동전의 앞면만 떼어놓을 수 없듯이 삶은 양면성을 지니는데, 우리는 밝은 면, 긍정적인 면만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꿈은 이루어진다’ ‘하면 된다’ 같은 긍정적 사고는 한국을, 그리고 미주 한인사회를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중요한 추진력이다. ‘1등’ ‘성공’ ‘대박’은 당연한 듯 만인의 지상목표가 되었다.

반면 이에 단짝처럼 동반되는 스트레스, 좌절감, 상대적 박탈감 등 경쟁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이면은 무시되었다. 꿈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안 되는 것이 더 많으며, 정상에 오르면 필히 내려올 때가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받아들일 정신적 근육을 키우지 못했다.

한국이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최근 발표된 ‘삶의 질 좋은 나라’ 조사에서 한국은 19위(미국 16위)라는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영국의 한 경제정보 평가기관이 세계 80개국을 대상으로 장차 어느 나라가 가장 건강하고 안전하고 번영된 삶의 기회를 제공할 것인 지를 조사한 결과이다.

이를 거칠게 대입하면 삶의 질과 자살은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건수는 삶의 질에 오히려 역행했다. 80년대 중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만명당 6~7명꼴이던 자살률이 2000년대 20여명으로 늘더니 지금은 31.7명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 한 대기업 회장이 자살 테이프를 끊더니 스타들이 줄줄이 자살하고, 대통령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학생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실직해 생계가 어렵다고 … 자살하는 케이스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과거 못 살던 시절 툭하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람들이 죽더니 지금은 툭하면 자살로 사람들이 죽는다.

성공지상주의로 단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사회가 그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성공’은 곧 ‘돈’이 되는 자본주의의 단순한 구도도 스타들의 자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이든 선수든 자기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곧 ‘대박’을 의미한다. 재능, 실력, 명예, 성취감은 뒷전이다.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을 보며 60대 배우 윤여정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요새는 (배우들이) 너무 누리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너무 갑자기 많은 걸 누리니까 (거기서) 떨어지면 그 상실감을 못 견디는 것 같아요. 우리 땐 톱스타가 되어도 별로 누리는 게 없었어요.”

삶이 가장 어려운 전쟁 때 혹은 집단수용소에서 자살은 오히려 적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어이 살려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훨씬 견딜만한 상황에서 자살이 느는 것은 ‘떨어지는 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위로 올라가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떨어지는 아픔, 좌절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기록적으로 많이 팔렸다고 한다. 한국의 20대 청춘들이 그만큼 많이 아프다는 말이 된다. 아픈 게 청춘뿐일까. 생애 어느 시점에도 아픔 없는 적은 없다. 희?로?애?락 모두가 삶의 당연한 요소라고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고 잃는다고 근심하지 않는다면, 장강 같은 여유로 인생을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삶은 견딜 만할 것이다. 아프니까 인생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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