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디지털 카메라에 담긴 디지털 이미지들을 인화하고, 이를 보관할 앨범 하나를 구입했다. 얼마만이지 모르겠다. 스크린이 아닌, 아직 따뜻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사진을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사진 속 장소와 사람들을 다시금 추억했다.
전날 찍은 사진부터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진까지, 참으로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이 그림처럼 때론 소설처럼 담겨있었다. 연출된 사진도 있었지만 크게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 아무리 특정한 의도를 갖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하더라도, 실제 사진이 찍히는 찰나까지의 조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부는 바람에 거칠게 머리카락이 날렸거나, 예상치 못한 플래시에 깜박이고만 눈처럼, 원래의 의도대로 연출되지 못한 순간의 사실만이 오롯이 담겨 있을 때가 많았다.
자신이 원하는 사물이나 사람만을 골라 찍거나, 정중앙에 배치하는 등, ‘사진 찍기’에는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상황과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기 원하는 자신의 공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에 ‘잘 포장된 사진’만큼 훌륭한 매체도 없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사진을 통해 특정한 사건과 사람들을 기념하려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마저 뜻대로 안될 때가 많다.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했던 2012년을 마감하는 때이다. 더불어 365일을 완성한 수없이 많은 찰나의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보는 때이다.
2012년이라는 앨범에는 어떤 사진들이 남아 있는가? 당신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따뜻하게 응시하는 누군가의 눈빛, 기대치 못한 순간 맞닥뜨린 기가 막힌 절경, 오랜 노력과 기다림으로 얻어낸 승리의 순간 등 연초 꿈꿔온 순간들이 있을 것이며, 그 간극을 메우는 얼마간의 NG 컷들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사진 찍기처럼 애초의 연출의도와 어긋나는 인생의 순간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굴곡과 돌발 상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해에도 많은 이들의 앨범에 올 초 미처 기대치 않았던 피사체가 있을 것이다. 일단 그 피사체와의 관계에 새삼 감사함을 느껴보는 것이 좋은 시작일 듯하다. 그리고 익숙함이 아닌 어색함을 즐길 줄 아는 인생의 여유와 불현듯 찾아오는 것에 거부감이 아닌 호기심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덧붙여 감정이나 판단, 선입견을 제하고 피사체를 바라볼 줄 아는 지혜와, 할 수만 있다면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타인들과 다른 사진을 찍어낼 줄 아는 구별된 시선 등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작은 사진 한 장을 보고도 우리는 그것을 찍은 이의 생각과 의도, 조금 더 과장하자면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상을 실제보다 크거나 작게, 선명하게 혹은 흐리게 보이게 하는 것, 후에 그렇게 기억되도록 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가치관의 산물인 셈이다.
어느 현인의 말처럼 미완성작은 ‘완성된 작품은 과연 어떠할까’ 라는 기대감을 키워준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결과보다는 과정의 진실성과 탁월성, 창의성에 힘쓸 때라는 희망을 새롭게 한다. 그렇다. 최고의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노유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