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자재고’ 회복세 주택시장 최대 복병

2012-12-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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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반신반의됐던 주택시장 회복이 연말에 이르러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택 거래는 부침을 거듭한 끝에 전반적인 증가세로 방향을 잡았다. 주택가격은 지표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연간 대비 3~6%대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주택시장 회복세에 힘입은 주택 건설업계의 움직임도 매우 활기차다. 한동안 주춤했던 주택건설에 박차를 가할 채비다. 주택착공 건수는 4년만에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주택 건설업계가 느끼는 체감지수는 6년만에 최상이다. 불과 1년 사이에 나타난 주택시장의‘환골탈태’에 주택 신중론자들도 최근 긍정적인 입장으로 급선회하는 모습이다. 주택시장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한 가지 찜찜한 점은 남아 있다. 주택시장 회복의 복병으로 남아 있는 그림자 재고. 현재 주택시장 업계는 그림자 재고 이슈를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지만 주택시장을 다시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무시해선 안 되는 이슈다.

모기지 연체·차압 진행중 주택은 통계에 안 잡혀
현재는 상태 양호한 차압매물에만 투자자 몰려
전문가“은행이 시장에 안 내놓은 주택 넘쳐나”

■비관론자들 긍정 전망 잇따라


주택시장 비관론자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진 수잔 왁터 교수가 최근 주택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주택시장 회복에 대한 반증이다. 왁터 펜실베니아 와튼 스쿨 교수는 주택시장 침체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8년 주택시장의 압류가 늘고 가격은 추가로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주택시장은 이같은 전망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였다.

은행의 대규모 부실 차압사태인 ‘로보 사이닝’과 관련해서는 사법처리가 완료되는 대로 은행이 보유중인 차압매물을 주택시장에 대거 쏟아내 주택가격의 추가 폭락을 이끌 것이라며 왁터 교수는 최근까지도 비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왁터 교수는 최근 주택가격 회복세와 관련, 주택가격 추가 폭락에 대한 예측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주택시장 회복세를 인정했다.

경제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 역시 기존의 비관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폴 애시워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택시장 지원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며 “그러자 지원책에 힘입어 재융자가 수월해졌고 이로 인해 차압이 감소하는 등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고객들에게 보냈다.

■괜찮은 차압매물만 팔릴 뿐

투자자들에 의한 차압매물 거래가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그나마 팔리는 차압매물은 상태가 양호해 은행 측이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매물만 팔리고 있다. 조슈아 로스너 은행 부문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아직도 은행이 시장에 내놓지 못한 채 보유중인 차압매물이 부실자산 장부에 넘쳐나고 있다.

대부분 판매성이 떨어질 정도로 상태가 불량해 은행 측이 매물로 내놓기를 꺼리는 매물들이다. 결국 제대로 손을 보지 못해 상태가 더욱 불량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은행 측에 더 큰 손실을 안겨줄 것으로 우려된다.

■통계에 안 잡힌 그림자 재고


올해 3분기 그림자 재고가 감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택시장 회복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이처럼 통계에 잡히는 그림자 재고는 모기지 연체가 진행 중이거나 이미 압류절차가 시작된 주택들이 대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재고도 많아 그림자 재고 감소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차압매물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추진중이다. 차압매물이 팔리지 않고 주택가격 하락을 주도할 것을 대비해 사모펀드 등 부동산 전문 투자그룹에 대량으로 매각해 이를 임대 수요로 녹여내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직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매된 차압매물 물량, 또는 임대주택으로 전환된 주택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발표된 것이 없어 프로그램 실시로 인한 그림자 재고 감소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는 상태다.

또 일반 주택 소유주 중에서도 주택가격 급락 등의 이유로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임대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통계는 더욱 불가능하다. 주택처분 불능에 따른 임대주택 전환의 경우 주택 소유주가 집을 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주택가격이 조금이라도 상승세를 보이면 다시 매물로 던질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형태 모두 그림자 재고로 포함시켜야 하지만 통상 발표되는 그림자 재고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재고까지 포함시킬 경우 현재 주택시장 회복에 대한 자신감은 다소 섣부른 감이 있고 회복시기도 늦춰질 것으로 우려된다.

■분위기 들뜬 건설업계도 경계 대상

현재 주택시장 회복 조짐에 가장 들뜬 부문은 주택 건설업계다. 주택경기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감으로 ‘인력난’까지 우려된다는 행복한 고민 중이다. 그간 주택 수요가 얼어붙는 바람에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주택 건설업체들은 최근 주택가격 상승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이 주택 건설을 재개하고 있다.

향후 전망을 내다보고 ‘집짓기’에 나서는 것이 주택 건설 업계의 추세로 앞으로 1~2년간은 다시 주택 건설현장의 공사소리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건설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이 다소 섣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주택가격 회복세가 아직 무르익지 않는데다 주택 대출이 여전히 까다로워 주택 수요가 건설업계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살아나기에는 다소 이르다는 우려다.

넬라 리처드슨 블룸버그 거버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크레딧 점수가 높지 않고 다운페이먼트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주택 구입 때 여전히 여러 장벽에 가로 막힌다”며 “현재와 같은 주택시장 회복 초기에 주택 건설업계가 과거처럼 투기적으로 신규 매물을 공급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잠재 주택공급 대량 대기중

주택시장에서는 매물 품귀현상에 따른 주택구입 어려움으로 아우성이다. 사려고 하는 사람은 있는데 살 집이 없어서 난리다. 주택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공급은 부족한 대신 수요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매물에 대한 잠재 공급량과 잠재 수요까지 따져봐야 주택시장 회복이 지속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그동안 잠재 수요로 여겨졌던 구입자들이 올해를 거치며 실수요자로 전환, 활발한 매물 샤핑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반대로 주택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주택들은 주택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셀러들이 판매를 보류하면서 주택시장에서 거둬들여지고 있는 추세다. 주택시장을 떠난 매물은 잠재 공급량으로 볼 수 있는 그림자 재고로 편입되고 있다. 잠재 공급량은 어떤 형태로든 미래에 다시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택가격 상승을 압박하는 요소로 언제든지 돌출할 수 있다.

■취약한 경제로 주택시장 불투명

취약한 경제 부문도 주택시장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고용시장 개선 등 경제가 희미하게 살아나는 모습이지만 재정절벽, 유럽 재정위기 등 회복을 가로막은 시한폭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시한폭탄이 터지면 경제는 물론 가까스로 살아난 주택시장 역시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이 확실시 된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약한 회복세에 강한 자신감을 비치는 시장의 모습이 흥미롭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 주택시장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 앤소니 샌더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 침체의 가장 효과적인 치유책은 가격 폭락을 감수하고라도 남아 있는 물량이 시장 수요에 의해 모두 자체적으로 소화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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