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 한가운데, 호랑이와 함께 표류라니…

2012-1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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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의 인생 (Life of Pi) ★★★★(5개 만점)

바다 한가운데, 호랑이와 함께 표류라니…

파이와 구명보트에 동승한 호랑이. 호랑이는 파이 내면의 수성이다.

영상 색채미 눈부신
모든 연령층의 우화

모세의 광야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색채미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상징과 은유가 많은 모든 연령층을 위한 우화다. 바다에서 호랑이와 함께 1년 가까이 표류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생존 투쟁기요 해양 모험영화로 지적이요 철학적이며 아름답고 심오한데 입체촬영의 카메라뿐 아니라 앙리 감독의 연출 또한 물 흐르듯 유연하다.

예술적으로 빼어난 시적 아름다움과 리듬을 지닌 형이상학적 영화로 중간 부분을 이루는 매우 긴 소년의 표류과정은 잘못 다뤘으면 지루할 수도 있으나 앙리는 이를 여러가지 사건과 에피소드 그리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시각적 경이로 흥미진진하게 처리했다. 얀 마르텔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


인도의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경영하는 부자 산토쉬 파텔의 둘째 아들 피신은 총명하고 호기심 많고 모든 신을 사랑하는 신앙심이 강한 소년으로 동물들 중 거대한 벵갈 호랑이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 이를 염려한 아버지는 피신에게 호랑이의 육식성과 위험을 실기로 보여준다. 조금 성장한 피신은 자기 이름을 줄여 파이로 한다.

영화는 성인이 된 파이가 작가에게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식으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영화 전체의 성질과 흐름에 어울리지가 않는다.

파이가 17세가 됐을 때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일본 화물선에 동물들을 싣고 인도를 떠난다. 그리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배는 악천후 속의 거대한 풍랑을 맞아 전복한다. 이 장면을 찍은 촬영이 어찔어찔할 정도로 어지럽고 무섭고 또 박진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구명보트에 타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 파이(수라지 샤르마-신인인데 힘든 역을 베테런처럼 해낸다). 그런데 보트에 호랑이가 타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짐승들은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하이에나로 이들은 컴퓨터 특수효과의 이미지다 .

영화의 중요한 얘기는 파이와 호랑이가 함께 모두 227일 간을 표류하면서 어떻게 공존하는가 하는 것이다. 파이는 육식성의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그를 길들여야 하는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호랑이는 파이의 내면의 수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식수와 먹을 것이 떨어져 가는 중에 총명하고 생존능력이 강한 파이는 호랑이를 리처드 파커라고 명명하고 그를 길들여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면서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던 인간과 짐승이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친구처럼 된다. 일종의 들러리들인 나머지 세 짐승들도 파이의 내면의 다른 성질들을 상징하고 있다.

긴 표류동안 파이는 온갖 지혜를 동원해 호랑이를 길들이랴 또 갈수록 줄어드는 식량과 식수의 대체물을 조달하랴 분주한데 인간의 힘으로 만으로는 부족해 하늘을 향해 구원을 요청한다. 영화는 종교적 색채도 품고 있다. 파이의 권태와 좌절감과 고통을 보는 관객의 영혼과 시각은 바다 위와 바다 속의 생물들과 아름다움을 찍은 찬탄을 금치 못할 촬영이 새롭게 해준다.


인도 색채가 묻은 음악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도 훌륭한데 옥에 티는 생존투쟁의 영화가 너무 아름답기만 하다는 점. 거칠고 사납고 야성적이지 못하고 또 긴박감이 모자라 곱기만 한 동화를 보는 느낌이다.

PG-13. Fox. 전지역.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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