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다른 힘‘고마움’

2012-10-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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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정한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어느덧 10월의 끝자락이 내일모래다. 올 한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간 듯해 아쉽지만 고마움이 한 보따리다. 요즘 마켓에 가면 풍성한 가을 냄새가 온몸을 휘감아 온다. 행복하다. 아기 주먹 만한 대추는 왜 그렇게 달고 맛있는지. 탐스런 포도, 사과, 배도 꿀을 발라 놓은 것 같다. 일년 내내 뜨거운 태양빛의 사랑을 독차지한 감사의 표시인가 보다.

당도 높은 과일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축복의 땅 캘리포니아에서 잘 익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입맛을 채워주는 많은 먹거리들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얼마 전 추석을 지내면서 소달구지 끌며 밭가는 한국의 정겨운 풍경이 떠올랐다. 허름한 한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기계로 물 주고 비행기로 농약 뿌리고 집채 만한 트랙터로 벌판 가득한 농작물들을 수확하는 미국 농부아저씨는 어쩐지 아직도 낯설다.

벌레 하나 없는 깨끗한 농작물을 손쉽게 먹게 해 준 농부의 수고를 고마워하는 동시에 그 뒤에 감추어진 하늘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이 가을에 더 절절하게 느끼며 생각해 본다.


밤에만 전기를 쓰는 가정집도 만만치 않은 요금을 꼬박꼬박 내야 한다. 여름과 겨울에 에어컨과 히터를 돌리면 사용료가 폭증하지만 계량기에 쓰인 숫자에 따라 아무 소리 없이 지불한다. 어디 전기뿐이랴. 매일 소비하는 식수와 씻는 물, 잔디와 나무를 살리는 스프링클러와 식당, 공장 등에 드는 엄청난 양의 물에 드는 돈도 우리는 세금까지 붙여 군말 없이 낸다.

그런데 지구촌에 고루 쏟아지는 비와 햇볕, 바람과 공기 등 우린 매일 엄청난 분량의 은총을 공짜로 누린다. 눈에 보이는 작은 것엔 그 가치를 계산해 척척 돈을 내면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온 인류 65억을 다 살리는 그 사랑엔 감사조차 잊어버리니 어떻게 된 일일까? 인공적인 작은 것엔 말없이 값을 지불하지만 그 놀라운 하늘 공급하심엔 오히려 감사를 잊은 것에 대해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공급이 중단되면 지구 전체가 마비될 수 있는 절박한 산소를 무료로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호흡과 함께 깊은 감사와 회개의 말을 하나님께 바쳐야 마땅하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만들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무한 공급해 주심에 대해 멈춰 서서 감사하자. 내 노력을 1%도 보태지 않았는데 대가없이 차별없이 한결같이 공급된다면 그것은 바다 같은 사랑이 아닌가!

세상에 어느 누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을 낳은 부모도 불완전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데 왜 우린 자꾸 이유를 달고 알지도 못하는 세계를 멋대로 해석하려 하는지. 은혜를 아는 사람은 고개를 숙인다. 따지지 않고, 거저 받았기에 거저 준다.

고마움을 아는 것, 그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고난 속의 형제를 살려낼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고마운 것들뿐이다. 고맙게 보이는 모든 것들에 용기를 내어 말해보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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