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만성“알프스 휴양지, 여기서 난 좀도둑질을 해”

2012-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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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Sister) ★★★★(5개 만점)

야만성“알프스 휴양지, 여기서 난 좀도둑질을 해”

시몽(왼쪽)과 루이즈가 히치하이크를 하려고 길가에 서 있다.

서민아파트에 사는
두 남매에 연민이…

부자들의 알프스 스키 휴양지가 올려다 보이는 스위스의 한 동네 후진 아파트에서 단 둘이 사는 12세난 시몽과 그의 불안정한 누나 루이즈의 탯줄처럼 감긴 사랑과 생존투쟁을 연민이 가득한 심정으로 조용하면서도 깊숙하니 그린 스위스 영화로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상 후보 출품작이다.

사회에서 버려진 두 남매의 하찮은 일상을 통해 부와 빈의 차이와 함께 가정과 가족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감정적 유대의 강인함을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다루고 있는데 일종의 성격탐구 영화이자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감독 우술라 마이어는 엄청나게 감정적인 내용을 알프스의 겨울과 눈처럼 차갑도록 절제된 거리를 두고 다루고 있는데 스타일이 우아하고 얘기가 전달해 주는 감동이 가슴을 아프게 할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

쥐 같이 생긴 시몽(케이시 모텟 클라인)은 낮이면 스키장에 올라가 휴양객들의 물건을 훔쳐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백팩에서 음식과 지갑을 훔치고 또 스키와 헬멧과 장갑 그리고 설안경 등을 훔쳐 스키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나 거리로 내려와 행인들에게 판다. 먹을 것은 집으로 가져가 루이즈와 함께 끼니를 때운다.

시몽은 날마다 도둑질을 해도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시몽이 매번 훔친 옷으로 갈아입을 뿐 아니라 마르고 작아서 인파 속에서 존재가 느껴지지도 않지만 시몽 말대로 부자들은 물건이 없어지면 또 사면되기 때문이다.

시몽은 이런 일을 매일 반복하는데 치열한 생존술을 터득한 간교할 정도로 영리한 그의 행동을 손에 든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낱낱이 기록한다. 한편 몽상적이요 아이처럼 심통을 부리는 루이즈는 한 직장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쫓겨나곤 하는데 종종 남자와 함께 집을 며칠씩 비운다. 시몽이 오히려 루이즈를 돌보는 오빠 같다.
영화에서 중요한 뜻을 가진 에피소드가 휴양지에 어린 아들과 함께 놀러온 영국 부인(질리언 앤더슨)과 시몽의 관계. 자신을 부잣집 아들로 속인 시몽이 자기에게 음식을 함께 먹자고 제안한 부인에게 음식 값을 내겠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또 휴양지를 떠나는 부인에게 느닷없이 안기는 시몽에게서 그가 갈망하는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니 묘사되고 있다.

작고 고독한 시몽과 흥청망청 대는 어른들 그리고 높은 곳의 휴양지와 낮은 곳의 서민 아파트를 대조적으로 찍은 촬영이 훌륭하다.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은 클라인의 연기. 별 말없이 조심스런 눈동자와 크게 움직이지 않는 민감한 표정 연기로 생존본능의 의식과 외로움과 동경을 가슴 아프게 절실하게 보여준다. 놀라운 연기다. 선댄스(8000 선셋),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타운센터(엔시노). 유니버시티 타운센터(어바인).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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