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추마레익 따라 서쪽으로 기름진 땅이…

2012-10-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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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75]

▶ 솔뱅과 샌타이네스 성당 이야기

벤추라시를 지나면서부터 벤추라 101번 프리웨이는 엘카미노 레알 101 프리웨이로 바뀌면서 이어진다.

1769년 8월18일 샌타바바라에서 두 그룹으로 나뉜 탐험대의 일부는 해안을 따라 서쪽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고, 또 다른 일부는 북쪽 방향인 오늘날의 154번 Hwy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는데 울창한 숲과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늘어선 구비 구비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커다란 카추마 레익(Cachuma Lake)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북쪽 탐험대에 속해 있던 크레스피 신부는 자신의 일지에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이 곳 인디언들이 카추마 호수(Lago Cachuma)라고 부르는 호수 근처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호수의 남쪽 길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말을 달려가는 사이, 어느새 호수는 샛강으로 변함을 보고 우리는 그 강을 애로요 데 이네스(Arroyo de Ines: 이네스 샛강)이라고 불렀으며, 또 그 강을 따라 펼쳐진 기름진 들판은 미션 건설에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름진 땅과 풍부한 수량이 있는 곳, 더군다나 포교의 대상인 아메리카 원주민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장소였다. 우리는 이 골짜기를 Valle de Santa Ines(샌타이네스 골짜기)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솔뱅이라는 도시로, 그 후 이곳에 샌타이네스 성당이 1804년 9월17일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Estrvan Tapis 신부에 의해 건립됐다. 바로 북쪽에 있는 라 프리시마(La Purisima) 미션과 바로 남쪽에 있는 샌타바바라 미션의 중간 지점이었다. 양쪽 미션에서 시설이 모자라 수용하지 못하는 추마시(Chumash)족 원주민을 수용해 교화시키기 위함이 그 목적이었는데, 엘카미노 레알의 19번째 건축물이었다.

신부들은 샌타이네스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을 건설하였으나, 1812년 12월21일 샌타바바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최초 건축되었던 많은 수의 성당과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새 성당은 튼튼하게 짓느라 벽 두께를 1.5-1.8m로 하고, 피게로아 산(Figueroa Mountain)과 샌라파엘산에서 큰 소나무를 가져와 사용했다고 한다. 이때 종루도 함께 지었으며 마침내 1817년 7월4일 완공을 보게 되었는데 오늘날까지 거의 200년을 유지하고 있다.

한 때 미션에 주둔하는 군인들과 군인 가족에 대한 보급과 급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부담이 미션에 지워졌는데, 이로 인해 심한 노동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1834년에 멕시코 의회가 통과시킨 세속화법에 의해 미션의 대부분의 땅은 근처에서 랜초를 운영하는 주민들에게 넘겨지기도 했다.

그 후 샌타이네스 성당은 1843년 멕시코의 마누엘 미첼토레나(Manuel Micheltorena) 13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의해 최초로 농민이 아닌 샌타이네스 주교 신부 이름으로 건물을 포함한 3만4,499에이커의 교회 대지를 증여 받기도 하였다.

이 성당의 신부들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최초로 교육시설을 만들어서 교육을 전제로 운영하였으나, 지진으로 미션이 붕괴되면서 1881년 이후 폐교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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