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797년 라수엔 신부, 가주 최대 ‘어도비’미션 완공

2012-08-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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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70] - 샌퍼난도 미션 이야기

샌퍼난도 레이 데 에스파냐(San Fernando Rey de Espana: 스페인 왕 성자 페르난도)란 이름의 성당은 1797년 9월8일 라수엔(Lasuen)신부에 의해 LA의 북쪽 샌퍼난도 밸리 지역에서17번째 미션으로 완성되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캘리포니아에 현존하는 미션 중에 가장 큰 어도비(진흙과 풀, 모래, 돌을 섞어서 반죽한 뒤에 틀에 넣어 벽돌모양을 만든 후 햇빛에 건조시킨 흙벽돌)건물의 콘벤토(convento)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콘벤토란 성직자들의 생활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통 교회 옆에 붙어 있게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교회 건물과 독립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꾸며 놓은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 하나를 나오면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오고, 각 방마다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어 훌륭한 박물관 역할을 한다. 수도사들이 사용했던 자그마한 서재에는 농업, 건축, 지리, 종교 등에 관한 책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었다.

당시 수도사들이 미션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건축, 보수하고 산업을 번성시키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식이 필요했었다고 한다.


스페인이 물러간 캘리포니아에 멕시코 정부가 들어서면서1834년 교회 재산이 몰수되어 농가에 나뉘어졌는데 이 때 이 미션도 농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캘리포니아 최대 규모의 아도베 건물을 자랑하던 이 미션에는 금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에 미션은 바닥까지 파헤쳐질 정도로 파괴되었으며, 그 후 거대한 콘벤토는 안타깝게 돼지 사육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 후 1845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피오피코가 이 빌딩을 팔기로 결정하였다가 여의치 않자 1846년에는 이 성당을 그의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후 1800년 대 말까지 여러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선착장의 창고 와 수도국의 창고로도 사용됐다.

1861년에 가톨릭교회로 다시 반환된 후, 이 미션은 1923년 오블래이트(Oblate) 신부에 의해 마침내 다시 예배당이 되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당시 100 파운드 가량의 커다란 교회 종이 새로 세워졌는데 그 종에는 러시안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1796년 1월, 이 종은 알렉산더 안드레이예비치 바라노프(Alexander Andreyevich Baranov)가 체재하는 동안 젊은 알래스카의 코디악(Kodiac)섬을 위해 주조한 것이다.”

이처럼 1700년대의 러시아의 그리스 정교회를 위해서 만들어 진 종이 어떻게 알래스카에서 남가주 가톨릭 미션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의 손실로 아직까지도 베일에 싸여있다고 한다.

이후 1971년에 샌퍼난도 미션의 성당은 남가주에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건물이 붕괴되어 결국 새로 건축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건축 공사는 3년 정도 걸렸으며 1974년에야 매듭을 보았다. 그 후로 건물을 잘 보살핀 결과 오늘날까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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