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중국 입맛에 맞추자”전전긍긍

2012-06-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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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중국 입맛에 맞추자”전전긍긍

‘너희들의 명성을 재건해 주기 위해’라는 슬로건 하에 북한군이 미국을 침략하고 있다.

세계 최대시장에 밉보이면 곤란
악당이나 적군으로 나오는 나라
중국서 북한으로 급히 바꾸기도

중국이 할리웃에 대한 투자를 해가 갈수록 확대하고 또 중국이 지난해에 일본을 제치고 할리웃 영화의 해외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할리웃의 메이저들이 자사 작품의 영화 내용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중국은 얼마 전 미국 내 두 번째로 큰 극장 체인인 AMC를 사들이는가 하면 메이저들과의 공동투자에 돈을 퍼붓는 등 할리웃 공략에 적극적인데 비록 중국이 현재는 1년에 20편의 외화 수입만 허락하지만 메이저들은 앞으로의 중국시장의 무한대한 넓이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조심스런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멘 인 블랙 3’(MIB 3)이 얼마 전 중국에서 개봉됐을 때 개봉 주말 총수입이 2,100만 달러로 이는 이 영화의 해외 개봉 50개국 중 그 어느 나라의 것보다도 많은 액수다.


MGM이 만든 1984년작 액션영화 ‘레드 던’(Red Dawn)의 리메이크에서 미국을 침략한 적군을 당초 중국에서 북한으로 바꾼 것도 중국의 반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이 영화를 팔려고 내놓았지만 중국시장을 생각한 배급사들이 그 누구도 영화를 사려고 하지 않자 부랴부랴 내용을 바꾼 것이다.

영화의 제작자들은 중국 국기와 군기를 디지털로 지우고 대사도 바꾼 뒤 미국 침공군을 만만한 북한군으로 바꿔놓았는데 어느 한 나라가 영화 내용에 대해 채 반대의 뜻을 표하기도 전에 영화사가 지레 겁을 먹고 내용을 수정한 것은 할리웃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내용이 수정된 뒤에야 영화는 독립 배급사인 필름디스트릭이 사서 오는 11월에 개봉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악한들이 북한의 악한들로 변신한 또 다른 경우가 비디오게임 홈프론트에서도 발생했다. 게임의 각본에서는 당초 미국을 침공한 적이 중국이었으나 방대한 중국 시장을 고려한 게임 발매사가 이를 북한으로 바꿔 버렸다.

한편 ‘레드 던’ 리메이크의 각본 내용이 지난 2009년에 밖으로 유출되면서 중국의 당의 통제를 받는 신문 글로벌 타임스로부터 사설로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국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 한 동안 중국과 장사를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본 메이저들로는 디즈니와 소니와 MGM 등이 있다. 이 메이저들은 각기 중국의 체제를 비판하는 ‘쿤둔’과 ‘티벳의 7년’ 및 ‘레드 코너’ 등을 개봉했다가 이런 보복을 당했다.

1984년 판 ‘레드 던’은 미국을 침공한 소련군에 맞서 콜로라도주의 한 작은 마을의 10대들이 게릴라전을 펴는 얘기로 패트릭 스웨이지와 찰리 쉰이 나왔다. 리메이크는 무대가 워싱턴주 스포켄으로 바뀐 것 외에는 원편과 비슷한 내용인데 크리스 헴스워드(‘토르’ ‘어벤저스’)가 주연하고 탐 크루즈의 아들 카너 크루즈가 공연한다. 한국계 윌 윤 리가 북한군 노대위로 나온다.

중국의 검열당국은 외화의 내용이 자국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는 장면이 있으면 가차 없이 가위질을 해버린다. 보도에 따르면 히트작 ‘멘 인 블랙 3’에서도 사악한 외계인들이 뉴욕 차이나타운의 중국 식당 종업원으로 나와 미국 첩보원 윌 스미스와 타미 리 존스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 3분 이상이 잘려 나갔다.

또 탐 크루즈가 나온 ‘미션: 임파서블 3’에서는 빨래가 널린 상하이 뒷골목 장면이 잘려 나갔고 ‘카리브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는 악한 해적으로 나온 주윤발의 장면이 몽땅 삭제됐다. 한편 중국 정부에 금기인물로 낙인이 찍힌 할리웃 영화인들로는 리처드 기어, 크리스천 베일, 샤론 스톤 및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있다.

그런데 미국을 침략한 나라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바뀌긴 했지만 과연 북한의 대형인 중국이 동생을 악의 나라로 묘사한 이 영화의 국내 수입을 하락할 지는 큰 미지수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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