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마, 시간을 넘어선 제국의 도시…

2012-06-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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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 10박11일 여행기 <2·끝>

▶ 알프스·평화·여유… 또 찾고 싶은 스위스

수천 년 유적 가득…‘서유럽 백미는 이탈리아’공감
118개의 섬 수상도시 베네치아엔 곤돌라의 낭만
‘세계 최고 응접실’샌마르코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어

유럽여행은 공부하는 여행이다. 유럽에서 방문하는 모든 도시와 유적지, 건축물, 예술품은 장구한 역사와 문화, 시대사조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 배경을 모르고는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되고 만다. 물론 가이드가 설명해 주지만 기초지식을 갖고 듣는 것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듣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떠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어딜 가나 관광객의 홍수를 만나는 것이었다. 특히 파리, 베르사이유, 베니스, 로마, 카프리섬은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인파에 밀려다니다시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과 중국에서 온 단체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국서 온 관광객들은 단번에 표시가 나는 것이 중년 이상은 지나치게 화려한 원색의 옷차림(등산용 형광색 점퍼 같은)을 하고 있고, 젊은 여성들은 패션쇼라도 하듯 지나치게 차려 입었으며, 동시에 모두들 완벽한 햇빛차단작전(챙 넓은 모자, 선글라스, 우산도 모자라 장갑마저)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유난한 차림새가 참으로 어글리 했다.


단체여행의 좋은 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숙식, 교통, 일정, 아무 것도 신경 쓸 일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 불편한 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스케줄에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보다는 좋았고, 음식과 호텔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유럽의 열악한 실정에서 거의 매일 한끼 정도는 한식당을 찾아 안내하는 성의가 눈물겨웠다고 할까. 물론 그 식당의 수준을 LA와 비교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전체 일정을 돌아보면 스위스의 호텔과 식사, 사람들, 분위기가 가장 정갈하고 흡족했다. 일행 중에도 스위스가 가장 좋았다며 나중에 이곳만 따로 방문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머리에 눈을 얹은 거대한 알프스 산자락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아래 옹기종기 자리잡은 작은 마을들, 성냥갑 같은 집들은 카메라만 갖다 대면 그대로 그림엽서였다. 건축과 유적물로 치자면 파리나 로마에 비해 볼 것이 없지만 그 평화로움과 여유가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런 한편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천지에 미국만큼 살기 좋고 편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뭐든지 크고 넓고 편하고 물자 풍부하고… 그러나 한편으론 크기만 하고 넓기만 하고 많기만 하지 멋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나라, 역사도 문화도 예술도 짧기만 한 재미없는 나라… 그래서 유럽여행은 영원한 로망인가보다.

◆다섯째 날
북유럽에서 이탈리아로 가려면 알프스를 넘어야 한다. 그 고산준령을 한니발과 나폴레옹은 엄청 고생하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면서 넘었지만 우리는 간단하게 브레너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갔다. 서양문명의 뿌리인 이탈리아는 기본이 천년, 웬만하면 이천년 된 유적이 그득한 곳이다. 고대 로마와 중세 천년, 르네상스와 근대의 유산을 모두 갖고 있으니 유럽에서 이탈리아를 먼저 보면 다른 곳들이 시시해진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첫 방문지 베로나는 2,100년 전 건축된 원형경기장 ‘아레나’와 ‘줄리엣 하우스’가 유명한 곳이다. 관광객과 소매치기들로 혼잡한 줄리엣의 집은 사실은 가상의 유적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라고 꾸며놓은 곳인데 입구엔 사랑의 낙서가 빼곡하고 씹던 껌들이 잔뜩 붙어있다. 마당에 서있는 줄리엣 동상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두 가슴만 반질반질하다.

이어 방문한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적 수도이며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 특별히 고딕양식의 절정을 이루는 밀라노 두오모가 유명하다. 착공 579년만에 완공된 이곳은 징그러울 정도로 정교한 첨탑들과 200여개의 조각품들이 외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사진으로 수없이 보았는데도 직접 보니 참 어마어마하다. 성당 왼쪽으로 명품 스토어가 몰려 있는 갤러리아를 지나 유럽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도 잠깐 둘러보았다.

호텔과 식사·사람과 분위기 가장 정갈하고 흡족
옹기종기 자리잡은 시골 마을은 마치 그림엽서


◆여섯째 날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지구상에 유례없는 특별한 곳이다. 게르만의 침입을 피해 지구의 끝까지 도망간 늪지대에서 사람들은 800년 동안 118개의 섬을 만들고 400여개의 다리를 놓았다. 한때 7만대에 달하던 곤돌라가 지금은 6,000대로 줄었다지만 중심지 산마르코 광장은 오늘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성당, 96미터 높이의 종탑으로 둘러싸인 광장은 한 면이 바다로 열려 있어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는 찬사를 보냈다는 곳이다.

베네치아의 상징이며 이탈리아 4대 성당 중 하나인 산마르코 대성당은 이집트에서 마가 성인의 유해를 훔쳐와 세웠다는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황금색 모자이크와 눈부신 벽화들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고 낭만을 즐기는 동안 자유시간을 이용해 종탑에 올라 베네치아 전망도 내려다보고, 베니스의 좁은 골목들을 탐험하고 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일곱째 날
피사의 사탑이 기울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피사 대성당에 딸린 이 종탑은 1172년 착공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지반이 약해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나 보수하면서 계속 지어 200년 후 완공됐다. 놀라운 것은 그 후에도 계속 기울어졌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수차례의 보수공사로 더 이상 기울지 않는다.

피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가 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물론 보티첼리, 라파엘로, 도나텔로, 보카치오, 단테, 마키야벨리, 지오토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천재들을 쏟아낸 곳, 반나절만 돌아보기엔 너무나 아쉬운 피렌체에서 우리는 삼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피렌체 두오모와 브루넬레스키의 대형 돔, ‘천국의 문’으로 유명한 세례당과 지오토의 종탑,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과 단테의 생가, 미켈란젤로 언덕을 둘러보며 500여년 전 메디치 가문의 공헌으로 꽃피웠던 찬란한 문화를 일별했다.

◆여덟째 날
이날이 아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지 싶다. 로마를 둘러본 하루는 고대와 현대가 혼재하고, 역사와 일상의 공존에 경외심마저 갖게 된 대단히 인상적인 날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콜러시엄, ‘벤허’의 모델이 된 전차경기장,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 가장 오래된 돔 구조물 판테온 신전, 영화 ‘애천’으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 ‘로마의 휴일’에 나온 스페인 광장 등을 숨가쁘게 돌아봤는데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포로 로마노와 바티칸이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기원 전 6세기부터 로마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유적지로 서로마제국이 망하면서 방치돼 토사 아래 묻혔다가 19세기부터 발굴이 시작됐다. 시저가 암살당한 원로원 의사당,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의 묘, 세베누스 황제의 개선문과 신전 등이 시간과 역사를 잊은 듯 복잡한 로마 시내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이 통치하는 인구 900명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다. 이곳에 딸린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영국의 브리티시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벽화를 오래도록 보고 싶었는데 사람들에 밀려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16세기 초 재건을 시작, 라파엘로, 베르니니, 미켈란젤로, 부라만테 등이 참여하여 120년간 건축됐는데 한번에 30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광장도 어마어마하지만 성당의 내부장식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홉째 날
대망의 서유럽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날 우리는 폼페이도 보고 나폴리에도 갔지만 절정은 카프리 섬이었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최초로 별장을 지은 이곳은 2,000년 동안 돈 있고 힘 있는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아온 휴양지로, 재클린과 오나시스의 신혼여행지였다고 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폴리에서부터 기차와 버스와 배를 타고 도착한 카프리섬에서 다시 곡예운전을 하는 택시를 타고 산중턱에 오른 다음 일인용 리프트를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섬의 절경도 잊을 수 없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올라가며 13분, 내려올 때 13분, 혼자 리프트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순간이다.

혼잡한 관광지를 아래로 하고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 들려오던 새소리, 나무냄새, 가벼운 바람과 발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는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현실과 인생의 시름마저 모두 잊게 하는 이번 여행 최대의 선물이었다.

■서유럽 10박11일 여행비용
일인당 2,999달러지만 가이드 팁(165유로)에 4가지 옵션(에펠탑·유람선/ 곤돌라/ 로마 리무진투어/ 카프리섬 관광-총 290유로)을 다 하고 간식(물, 커피, 젤라토, 과자, 초컬릿 등)까지 사먹으면 일인당 4,000달러는 쓰게 된다. 개인 샤핑은 물론 제외. 그나마 요즘 유로가 싸서 큰 도움이 됐다.

“순발력·유머감각, 여행의 활력소”

서유럽 관광 가이드 맡은 윤복기씨

이번 서유럽여행은 ‘윤복기’(발음에 주의하자)라는 가이드 때문에 대단히 즐거웠다. 아주관광 유럽지사장인 그는 스위스에서부터 우리 팀을 인수해 7일 동안 안내했는데 12년의 오랜 경력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순발력 있는 유머와 입담으로 우리를 수없이 감격시키고 깔깔거리게 했다. LA에서 온 송승준 부장과 함께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며 ‘2인 가이드 입체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한’(신문광고 문구대로) 그는 약간의 ‘자뻑’이 있긴 했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가이드였다.

사실 단체여행을 해보니 50여명을 하루 세끼 챙겨 먹이고 때마다 화장실을 찾아 들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 자유시간을 줄 때마다 말 안 듣는 사람, 늦게 오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라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닌데 그 모든 상황을 노련하게 대처하며 재미있게 반전시키는 그의 재치는 매번 버스여행에 지친 우리를 한바탕 웃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멋졌던 것은 진정한 패셔니스타로서 매일 티셔츠와 신발, 재킷과 가방을 기막히게 맥스 앤 매치하여 아줌마들을 열광시켰다는 것이다. 몸매마저 완전 날씬하고, 약간 느끼한 헤어스타일에 이국적인 마스크까지 조화를 이루니 바로 오빠부대와 팬클럽이 형성됐을 정도.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사방각지에서 그에 대한 감사의 글이 올라있을 만큼 그는 유럽전문 유명 가이드였다.


<아주관광 후원>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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