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K-TOWN 삶의 즐거움

2012-06-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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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용의 “부자로 가는 길”

은퇴하면 한인 타운으로 이사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몇몇 지인들과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꽃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은퇴하면 LA K-TOWN으로 이사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산지도 약 20여년이 지나고 그동안 LA폭동, 지진, 산불 등 힘든 일들도 경험해보았다. 더군다나 90년대 초반의 불경기와 2010년말의 불경기도 겪으며 한인 타운에서 살고 있다. 이곳 생활의 즐거움과 감사함에 덧붙여 여러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첫째, 감사한 일은 집값이 엄청 많이 올랐다는 것 이다. 한때는 95년 시세에 비해 최고 5배이상 올랐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투자중의 하나이다. 이삼년 전에 부동산 투자를 꽤 잘하는 의사 한분이 투자처를 찾다보니 이상하게도 한인 타운 근처는 주택값이 아주 잘 버틴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코리아 타운 집값은 다른 곳에 비해 굉장히 잘 버틴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이 누구인가. 끝까지 은근과 끈기로 버티는 정신력이 있으니까. 하다 못해 셋방을 놓더라도 부동산을 지키려는 애착심을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다 보니 한번 올라간 집값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둘째, 엄청나게 시간을 버는 것이다.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전문직은 시간이 돈이다. 시간을 번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과 같다. CPA 사무실도 같은 K 타운에 있으니 나는 출퇴근 시간이 겨우 10분정도 밖에는 안 걸린다. 거리로 따지면 약 왕복 2마일도 안된다. 우리 사무실의 직원이 다이아몬드바에 살고 있다. 트래픽이 없으면 약 50분 걸리고 트래픽이 많으면 약 한시간 이상이 더 걸린다고 한다. 혹시라도 교통 사고라도 있으면 보통 2시간 이상 걸리니 하루에 길거리에서 소모하는 시간만 약 2시간 반 이상이다. 시간, 개솔린 값에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이 받는가? 사무실 출근이 늦으면 눈치보이고, 지쳐서 졸고. 시간에 쫓기고 개스값 많이 들고 혹시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어떤 분은 아예 사우나에서 자고 다니는 분도 보았다. 심지어는 주중에는 하숙하고 주말에만 가족들과 생활하는 분까지 있다. 겨우 50마일 거리에서도 기러기 아빠가 있다. 이런 일이 없이 사는 것도 K 타운에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셋째, 많은 모임이 이곳에서 있으므로 생기는 편리성이다. 연말연시 각종 모임에 갈 때 처음부터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운전의 걱정이 없으니 마음놓고 한잔 할 수도 있고 조금 늦게 출발해도 정시에 도착할 수도 있고, 조금 늦게 있어도 집에 가는 시간이 절약되니 좋다.

어떤 분은 팔로스 버데스에 사시는 데 한인 타운 한번 오면 하루의 일과가 끝난다고 한다. 혹시 가까운 사람들과 정담이라도 나눌라 치면 음주 운전 걱정에 그 또한 스트레스이고 혹시라도 동시 픽업으로 집에 가면 기본이 100달러라고 한다. 이곳에 살면 이런 저런 걱정없이 한 5달러만 있으면 모두 해결되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나. 한인 사회는 이런 저런 관계가 얽히고 설킨 연고 사회이다. 같은 학교를 다녔으면 동문 수학이고 같은 고향에 태어나서 고향 까마귀이고 사돈의 팔촌이라도 걸리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면서 3대 연고를 찾는다.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이다. 이런 저런 곳에 가서 멀어서 못가고 바빠서 못가고 술때문에 못가면 나중에는 마땅히 친구하나없이 지내기 쉽상이지만 한인 타운에 풍부하고 다양한 식당과 모임 장소가 있으니 이곳에 사는 것이 고마운 것이다.

넷째는 아이들 교육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군 따라 이사를 간다. 우리 식구들도 학군 문제로 이사가는 것이 대단한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초등, 중등과정은 영재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매일 아침 버스로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항상 6시 이전에 일어나서 준비해야했다. 적어도 9년 동안 아침 6시면 기상했다. 식구 모두가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부지런해졌다. 물론 힘들었지만 부지런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교육된 것이다. 물론 저녁에 집에 오면 지쳐서 파김치가 되는 날들도 많았지만 자녀들은 그러면서 단단하게 발전해갔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은 괭장한 교육을 받았다. 그것은 약 4년동안 매일 아침 등교길이면 “인사하기 연습" “미소 짓기 연습" 이었다.

이제는 그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찍 일어나고 언제나 사람을 만나면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한다. 중등학교 등교길에 연습한 결과는 지금도 앞으로도 많은 수확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즘 말로 ‘미인 대칭’, 미소로 인사하고 대화로 칭찬한다는 이 말이 한국여자 고등학교의 성공 이유였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의 솔선 수범, 미소로 인사하는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 밑에서 칭찬받는 학생들의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성공사례라고 한다.

끝으로 이곳에 살면서 우리들의 희노애락을 많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도량이 넓어진 것 같다. 막 이민와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그들의 삶을 통해서 겸손해 질 수 있었다. 바쁘고 힘들게 사업하는 분들이 새벽에 보자면 새벽에, 늦으면 늦은 시간에 심지어는 주말에서 만나 도와 줄 수 있었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매일 아침 한시간씩 운동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다. 공인회계사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몸살 한번 없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것은 20년이상 매일 아침 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인 타운에 사는 감사한 일 중에 하나이다. 은퇴하기 전에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나면 한인 타운으로 이사와서 살만 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끼리끼리 모여 사는 한인들의 울타리 문화에는 더욱 그렇다.

(213)380-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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