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자들이 지키는 회교-기독교 간 평화

2012-05-11 (금)
크게 작게

▶ ‘어디로 갈까요?’(Where Do We Go Now?) ★★★(5개 만점)

▶ 심각한 주제 가벼운 터치 레바논 제작 현대판 우화

여자들이 지키는 회교-기독교 간 평화

기독교 여인들과 회교도 여인들이 남자들의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다.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해 장례식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는 회교도 대 기독교도들 간의 다툼으로 남자들이 사망하자 여자들이 종교를 초월해 단결해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 일종의 현대판 우화다. 레바논 영화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코믹터치로 다루면서 재미있고 우습고 쾌적한 영화로 만든 것까지는 좋으나 진지하고 비극적인 부분까지 지나치게 코미디로 만들어 영화가 다소 경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중심인물들의 성격 개발이 제대로 안 된 것도 아쉽다.
처음에 검은 옷에 머리에 스카프를 쓴 여자들과 역시 검은 옷에 가슴에 십자가를 단 여자들이 함께 장례식 차 공동묘지로 가다가 묘지에 도착, 각기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어 일부는 회교도 묘지로 다른 일부는 기독교 묘지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부분 촬영이 아름답고 감각적이다.

중동의 외부 세계와 단절된 한 작은 마을. TV도 안 들어오는 이 마을은 지뢰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무너져 가는 다리 하나로 외부 세계와 통한다. 마을에는 기독교도들과 회교도들이 각기 교회와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며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지낸다.
특히 여자들의 사이가 아주 좋은데 이들은 낮에는 성질이 불같은 기독교도 과부 아말(나딘 라바키-이 영화의 감독)이 경영하는 카페에 모여 공동사업을 논의하고 또 가십도 즐긴다. 그런데 마을 밖에서의 종파 분쟁의 소식이 마을 안으로 새어 들어오면서 어제까지 친구지간이던 회교도 남자들과 기독교도 남자들 간에 분쟁이 일고 이로 인해 마을의 평화 공존이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들이 서로 죽이겠다고 날뛰는 것을 보다 못한 여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를 막아보려고 일치단결해 그 방법을 논의한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종파 간 분쟁으로 사망한 젊은 아들의 죽음을 숨기려고 안간 힘을 쓰는 한 회교도 어머니의 노력.


그러나 이런 심각한 비극적 사건을 너무 코믹하게 처리해 극적 충격이 전연 없다. 또 종교를 초월한 로맨스의 장본인들인 아말과 회교도인 핸디맨 라비(줄리안 파라트)의 인물묘사도 두 사람 외에 많은 주변 인물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아주 약하다. 한편 마을 아낙네들은 남자들의 전의를 가라앉히기 위해 외부에서 우크라이나 댄서들을 초청해 파티를 여는데 상당히 오래 계속되는 이 부분을 포함해 중간 부분이 축 처져 영화의 생기를 빼앗는다.

환상적인 장면을 비롯해 영화를 알록달록하고 코믹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 기운이 역력한데 플롯이 튼튼치 못하다. 그리고 남자들은 거의 다 멍청하거나 고집불통으로 만든 것도 상투적이다. 마지막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한방 맞은 듯 충격을 준다. PG-13. Sony Classics. 일부 지역.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