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후안 바우티스타 앤자 이야기 (끝)

2012-01-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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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39]

▶ 기름진 토양 샌호제는 스페인군 식량 보급지로

두 번째 탐험으로 소노라(Sonora) 지역을 출발한 앤자(Anza) 일행은 계속하여 지금의 새크라멘토(Sacramento: ‘성체’란 의미)에 도착했다.

1776년 3월25일의 일기에서 앤자는 "우리는 7시간 반을 행군하여 마침내 샌조셉 쿠퍼티노(San Joseph Cupertino)의 강기슭에 도달했다. 우리는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이 지역에서는 예바 부에나(Yerba buena: ‘약초’라는 뜻의 스패니시로 지금의 샌프란시스코)의 항만으로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기록했다.


두 달 뒤 일행은 소노라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몬트레이 요새에 도착, 마침내 LA에서 북가주 소노라까지의 내륙 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얼마 뒤인 1776년 6월 식민지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군 장교 호세 호아퀸 모라가(Jose Joaquin Moraga)는 몬트레이의 일부 병력과 정착민들을 이끌고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여 San Francisco de Asis의 미션과 요새를 건설했다.

한편 앤자 일행은 샌프란시스코까지의 루트를 개발하고 돌아가는 길에 샌호제 드 과달루페(San Jose de Guadalupe)이란 마을에 잠시 머물며 기름진 토지와 풍부한 강물을 보며 사람이 살기에 좋은 거주지로 판단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 샌호제다. 샌호제는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알타 캘리포니아의 몬트레이와 샌프란시스코에 주둔 중인 스페인 군대의 식량 보급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군의 요새는 샌디에고, 샌타바바라, 몬트레이,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는데 LA지역의 농장에서 샌디에고와 샌타바바라 요새에, 샌호제 지역 농장은 몬트레이와 샌프란시스코 요새에 군량을 공급했다고 한다.

1777년 8월24일 앤자는 공로를 인정받아 누에보 멕시코(뉴멕시코주) 주지사에 임명됐다.

그 후 앤자가 개척한 루트를 따라 멕시코 주민들의 이주가 이어졌지만, 원주민 유마(Yuma)족이 스페인 신부 34명을 처형하고, 콜로라도 강가의 미션 두 곳을 전소시키는 사건으로 인해 멕시코와 캘리포니아의 육로 교류가 40년간 단절되기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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