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능한 이수일과 현명한 심순애

2011-10-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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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연중 칼럼

변사의 목소리로 "순애야, 김중배의 금강석 반지가 그리도 좋았더냐?" 하며 ‘이수일과 심순애’의 한 장면이었을 듯싶은 대목을 길게 끌며 부르짖는 소리를 TV 프로그램이나 풍자 코미디를 통해 들었거나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아주 오래 전에 창극이나 연극으로 또는 영화로도 상영되어, 실제로 보았거나 그저 필자처럼 스치는 이야기로 몇 대목만 듣고 자랐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리라 생각된다.

내용은 아름다운 여주인공인 심순애가 사랑하는 남자 이수일을 버리고 돈 많은 김중배에게 시집을 간다는 것인데, 결혼한 둘이 잘 살았는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돈을 좇아갔던 심순애가 결국은 불행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돈 많은 김중배가 악인처럼 느껴졌었고, 모두들 잘못된 선택을 한 심순애의 배신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은 탓인가? 지금 생각하면 김중배는 대부분 현대 여자들의 로망이고 ‘이수일과 심순애’는 그저 무능한 이수일의 넋두리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근한 예가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물질과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었는데, 그 분 말씀이 그것은 돈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하며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의 헛소리라고 농담처럼 얘기해서, 웃으며 돌아서기는 했으나 그것이 농담만은 아닌, 이 세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일어났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로서는 잘 알 수 없는 복잡한 방식으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려던 사람들과 기업들의 욕심 때문에 어느 곳에선가 어긋나게 되어, 결국 이런 경제파탄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인들의 무분별한 주택 구입으로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했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곤경에 빠졌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겠으나 부동산 버블의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증권화라는 금융기술 때문이다. 증권화 되지 않았을 때는 금융기관이 모기지 융자를 통해 고정적인 이자와 수수료 수입을 통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대출자가 페이먼트를 할 수 없게 되어 부도가 날 때에는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즉 이윤에는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 비즈니스의 원칙이다.

그러나 증권화 수법에 의해 대출업계는 이윤만 챙기고 대출 자체를 남에게 매각하여 위험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손실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자 무자격자에게도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 주었다.

그러자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자기 분수를 생각지 않고 우선 빌려서 벌려놓고 보자는 무책임한 태도가 되었고 금융기관 역시 이유가 어떻든 이윤만 챙기면 된다는 태도로 대출을 해 준 셈이 된 것이다.

즉 금융기관들은 마구잡이 대출 후 이 채권을 다시 우량 채권들과 합하여 높은 신용등급을 받은 파생상품으로 재가공하니, 이 채권들이 미국 내는 물론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금융시장에서 이윤이 많아 보이는 매력적이고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썩은 고기에 좋은 빵과 신선한 야채를 넣어 고급 햄버거라고 식도락가에게 판매한 것과 같다고도 하는데 참 적절한 비유이다. 이런 도덕적인 해이와 잘못된 가치관이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지금같이 어렵기만 한 ‘경제적 식중독’ 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나만 챙기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모든 사람들을, 아니 온 세상을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부를 축적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구입한다. 부동산 투자가 다른 투자보다 안정적이고, 장·단기적으로 가장 큰 이윤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면 마음의 평안을 얻고 행복해질 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부동산 투자 때문에 경제적 파탄과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맞는 사람도 주위에서 많이 본다.


안타깝게도 지나친 욕심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능히 투자를 할 상황인데도 너무 앞뒤로 계산만 하다가 투자시기를 놓치거나, 팔아야 할 상황인데도 조금 더 많이 받고 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것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종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상황들이 우리 모두 잘못된 동기를 견제하지 못하고 무절제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면서도 나뿐 아니라 누구도 이 욕심에서 자유스럽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어떤 욕심을 버려야 할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우선은 부동산 전문인으로서 무조건 매매하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에 맞는 진정한 프로다운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다짐해 본다.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하면서…

(213)272-1234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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