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12명의 친구

2011-10-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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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이 시골길을 걷다 개구리 한 마리를 보았는데, 이 개구리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개구리가 노인에게 말하기를 "저에게 키스를 해 주시면 저는 예쁜 공주로 변할 것이에요." 이 말을 듣자 노인은 바로 개구리를 잡아 자기의 주머니 속에 넣고는 계속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머니에 갇힌 개구리가 소리치기를 "나에게 키스 한 번만 해 주시면 예쁘고 젊은 공주와 평생살 수 있을 테니 어서 꺼내어 키스를 해 주세요" 하더란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내 나이에는 젊고 예쁜 여자보다는 말이 통하는 너 같은 개구리가 더 좋은 거야"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친구가 귀해지는 노년기에, 이야기 상대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어려서 읽은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에 빗댄 재치 있는 비유이다.

지난해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심리학자, 경영 컨설턴트와 사회사업가 등 사회의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소위 ‘행복위원회’를 만들어 ‘행복헌장’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지침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이 친구이다. 그 뒤를 이어 돈이나 일, 건강, 운동, 좋은 음식, 휴가 등이 나왔다.


또 하나의 비슷한 연구 결과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박사의 연구 결과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 268명의 72년 간의 삶을 추적 조사하여 그들의 인생을 통하여 본 ‘행복의 조건’이란 책을 썼는데 놀랍게도 이 수재들의 삶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눈 것은 부나 학벌 혹은 명예 같은 것들이 아니라 그들이 45세 무렵까지 맺어온 인간관계가 그 이후의 생애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고 한다.

즉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복한 삶은 지적인 우수성이나 부유함 혹은 계급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따뜻한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을 누리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으며 인간관계가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관계를 통한 선택’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 중에도 친구가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의 경우 인간관계가 주로 업무와 연결되다보니 퇴직을 하고 나면 그 동안 교류를 해 오던 지인들과 자연히 멀어지게 마련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뿐인가 경쟁사회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혹은 가장으로서의 의무 때문에 평생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다 보니 가족에게 본의 아니게 소홀하게 되어, 자칫하면 은퇴 후에 가정에서도 설 자리가 좁아질 수도 있을 테니 흡사 늙어서 힘 떨어지면 사자 무리에서 쭟겨 난다는 숫사자 꼴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힘 있는 젊은 숫사자는 무리 속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군림하지만 그렇게 무리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던 숫사자도(나이가 들어도 가족과 함께 살게 되는 암사자와 달리) 늙어 다리에 힘이 빠지게 되면 무리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무리에서 내쳐진 숫사자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사냥을 하지 못하는 맹수는 이미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동물의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그러니 이제라도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되는 좋은 친구가 내게는 몇이나 있는지 한 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 과연 나도 친구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자주 만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하고, 서운한 일이 있었다면 관대하게 먼저 풀어 버리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12명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이고, 둘째는 무엇을 하고자 해도 믿고 따라오는 후배, 셋째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친구, 넷째는 나의 변신을 유혹하는 날라리 친구, 다섯째는 여행하기 좋은 먼 곳에 사는 친구, 여섯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인 친구, 일곱째는 언제라도 불러 낼 수 있는 술친구, 여덟째는 독립공간을 가진 독신 친구, 아홉째는 부담 없이 돈을 빌려주는 부자 친구, 열번째는 추억을 많이 공유한 오래된 친구, 열한 번째는 연애감정 안 생기는 속 깊은 이성친구이며 마지막 열두번째 친구는? 아마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위에 열거한 보편타당한 친구가 아닌 각자 자신만의 특별한 친구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귀하의 특별한 친구는 누구인가 ?


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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