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려하고 먹음직한 요리들 감동의 세계~

2011-10-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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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는 달라도 가슴 훈훈해지는 음식영화들

▶ ■ 다시 보고싶은 음식영화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한 나라의 관습, 정서, 예절을 모두 포함한 문화를 한 번에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풍경 하나만 자세히 관찰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살아가는 이야기에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서 음식은 우리 인생 속에 수없이 많은 잔가지를 뻗어 즐거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마 전 홀푸즈 마켓의 웹사이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영화를 설문조사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며 자신들이 특별히 인상 깊게 본 영화 속 음식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음식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셰프의 음식에 대한 새로운 발견
*노 레저베이션즈
(No Reservations, 2007, 감독-스콧 힉스)


‘사랑의 레서피’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뉴욕 맨해턴의 고급 레스토랑 총 주방장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는 요리와 일에 있어 완벽주의자로 너무나 큰 자부심을 가진 나머지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놓치고 산다.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으로 조카를 키우게 되면서 겪게 되는 힘든 시간, 식당 주방과 새로 영입된 부주방장 닉(아론 에카트)과의 로맨스를 다룬다. 그녀가 항상 만드는 프와그라 같은 고급 요리는 입에 대지도 않고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는 조카에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가까워지고, 먹지 않던 디저트를 먹게 되면서 보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해가는 등, 변화의 순간 속에 음식이 감초처럼 끼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벽 일찍 수산시장에 나가 가장 신선한 재료를 선점해 경쟁자를 따돌리기도 하고 최고 주방장으로서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 전쟁터 같은 고급 식당의 주방, 프로들의 요리하는 모습 등을 보는 재미도 있다.


가족사랑으로 버무린 수많은 중국요리의 향연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 1994, 감독 이안)

은퇴한 대만 최고의 거물급 요리사 주사부는 국빈을 대접하는 등의 특별한 행사가 없을 때는 집에서 세 딸을 위해 요리한다. 요리사 아버지가 집에서 만드는 음식은 스케일이 다르다. 무지막지한 채칼을 솜방망이 휘두르듯 사용해 채소를 다지고, 게와 생선을 다듬으며, 찌고, 굽고, 튀기는 중국요리의 다양함과 화려한 손놀림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다. 아버지가 일하는 연회가 있는 날 대만 최고의 호텔인 원산호텔 내 ‘원산대반점’에서 수많은 요리사들의 요리장면은 블락버스터급 스케일을 보여준다. 120분의 러닝타임 내내 100여가지의 요리가 끝없이 화면을 채운다. 막내딸이 남자 친구를 데려와 임신을 알리고 떠나가는 날 아버지가 차린 훠궈(진한 육수나 매운 기름에 재료를 담가 익혀 먹는 요리)와 각기 다른 모양의 식기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다른 인생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에 제작된 모든 음식 관련 아시안 영화는 음식남녀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만찬통한 인간성 회복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1987, 감독-가브리엘 엑셀)

황량한 북구, 노르웨이 피오르 지방의 조그만 청교도 마을에는 마르띠네와 필리파 두 자매가 살고 있다. 목사이자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자리를 대신하며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며 노년을 맞은 그녀들의 일상에 바베트라는 낯선 프랑스 여인이 나타난다. 자매는 오갈 데 없는 바베트를 받아들여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날 바베트가 일만 프랑짜리 복권에 당첨되는 일이 일어난다.


마침 아버지의 생일기념일, 바베트는 이날 복권 당첨된 돈으로 자신이 직접 완벽한 프랑스식 만찬을 차리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였음을 숨기고 있던 바베트는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고, 진귀한 음식들은 금욕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용서와 사랑을 회복시켜 준다.

음식을 예술로 여기고 단 한 번의 만찬에 전 재산을 쏟아 붓고도 행복해 하는 바베트의 음식은 종교만큼이나 숭고하다. 종교가 예술의 기쁨과 희열을 받아들였을 때, 그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과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감동적인 영화는 걸작으로 남아 아직도 영화에 등장한 요리를 오마주하고, 등장한 와인(대부분 병당 100만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걸작들이라고 한다)을 마시는 모임이 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라이크 워터 포 초컬릿 (Like Water for Chocolate, 1992, 감독-알폰소 아라우)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뤘다. 시대와 가족사에 얽혀 살아가는 이야기와 아픔, 희망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랑이 음식을 통해 전달된다. 명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막내딸은 출가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대표적인 악습의 희생양인 티타는 어머니의 독선과 폭력을 부엌에서 견뎌낸다. 엔빠나다가 익어가는 냄새, 절구 속에 재료가 한데 으깨어지고, 향신료가 섞여 들어가며 만들어내는 향과 맛의 매력은 그녀의 해방구였다. 티타가 요리를 통해 발견한 자신의 재능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내면의 바람을 실천으로 옮겨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 요리는 그녀의 종교이며 삶의 가장 진실한 의식이 된다. 스스로 자신을 역경으로부터 구해내고,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사랑도 결실을 맺는다. 제목은 핫 초컬릿을 만들기 위한 물이 끓어 넘치지 않아야 하는 상황으로 그녀 내면의 욕망의 불길을 절제해야만 하는 고통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 2009, 감독-노라 에프런)
미국 요리계의 어머니이자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로 유명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와 뉴욕시 공무원이자 요리 블로거인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공무원으로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살던 줄리 파웰은 어릴 적 즐겨보던 요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줄리아 차일드의 두 권의 요리책(My Life in France,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수록된 524개의 요리를 365일에 모두 만들어보는 도전을 시작하고 블로그를 통해 이를 세상에 알린다. 동시에 줄리아 차일드의 과거를 되짚어보는데,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주하며 낯선 외국생활에서 먹는 일에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그녀가 명문 요리학교 입학으로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면서부터 이를 통해 스스로 성공을 일궈내는 인생도 함께 그려나간다. 50년의 세월 차이가 오직 음식으로 연결되어 흥미진진한 영상을 연출한다. 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립이 진짜 줄리아 차일드가 살아 돌아온 듯 완벽한 연기를 보이고, 프렌치 요리의 기초부터 소스 만들기, 속을 채워 넣은 닭 꿰매기, 양갈비 등 화려해 보이는 요리들을 작디작은 아파트 부엌에서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해내는 과정을 통해 유쾌한 감동을 전한다.


*쇼콜라(Chocolate, 2000, 감독-라세 홀스트롬)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딸과 함께 떠돌아다니며 사는 비엔(줄리엣 비노슈)이 나타난다. 이 마을은 지난 100년간 아무런 변화도 용납됨 없이 엄격한 가톨릭 규율과 신앙심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성당에 가야 하고, 사순절에는 금식을 하며 단순하게 살아간다. 비엔은 이를 거부하고 모두가 금식중인 사순절 기간에 사치스러운 쾌락의 과자로 여겨지던 초컬릿 가게를 연다. 2000년 전 마야의 방법대로 초컬릿을 만든다는 가게의 겉모습은 전체적으로 파란색, 초컬릿은 갈색, 그녀는 빨간색 구두를 신은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져 흑백의 마을에 오직 초컬릿 가게만이 천연색으로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달콤한 초컬릿을 전해 주면서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도록 도와주는데, 신기하게도 이 초컬릿을 먹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권위적인 종교의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었던 사랑이 다시 살아난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초컬릿은 악마의 유혹이지만, 사회의 약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상처를 치유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 배우 줄리엣 비노슈는 비엔을 현실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프랑스의 초컬릿 학교에 입학, 실제 초컬릿 제조과정을 수강해 사실적인 연기를 펼쳤다고 한다.


*남극의 셰프 (일본, 2009, 감독-오키타 슈이치)
해발 3.810m, 평균기온 영하 54도의 극한지인 남극 돔 기지에서 8명의 남자 대원들의 생활을 음식을 통해 보여준다. 기상학자, 빙하학자, 차량담당, 대기학자, 통신담당, 의료담당 등 다양한 인력이 있지만 여기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조리담당인 니시무라다. 24시간 새하얀 눈에 뒤덮여 사는 그들의 유일한 낙은 니시무라의 요리를 먹는 일. 금방 만든 따끈한 요리들이 화면 가득 등장하는데, 평범한 일본 가정식에서부터 호화로운 만찬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미소라면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오로라 관측도 포기할 만큼 오랜만에 식탁에 올라온 미소라면 한 그릇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대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라타뚜이 (Ratatouille, 2007, 감독-브래드 버드, 잔 핑카바)
생생한 캐릭터, 능숙한 스토리텔링, 자연스러우면서도 재미있고 완벽한 주제 전달과 함께 군침 돌게 하는 음식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함께 해서는 안 될 ‘음식’과 ‘쥐’가 만나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보편적 가치를 즐거운 감동으로 전달한다. 뛰어난 미각을 가진 생쥐 레미는 전설적인 요리사 구스모토의 요리 프로를 보며 요리사를 꿈꾸는데, 우연히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운명처럼 발을 들이게 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요리를 시작하게 되어 그의 꿈을 이루어간다. 레미는 가장 시골스러운 음식인 채소 스튜 라타뚜이를 고급 식당에 걸맞도록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내는데, 이 메뉴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식 평론가의 입맛까지도 감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영화 후 라타뚜이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요리되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고, 채소를 먹지 않는 어린이가 영화를 보고 채소를 잘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그로우 (Grow, 2011, 감독- 안토니 마스터슨)
2011년 로마 국제 필름 페스트벌에서 우승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다큐멘터리 영화다. 홀푸즈 마켓이 스폰서 한 작품으로 2005년부터 사진작가와 영화인 몇 명이 조지아의 젊은 농부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취재한 자료를 모은 내용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자연을 보호하고 유기농 작물을 생산하는 농장과 농부가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보통 ‘가격’에만 머무르는 정도이고, 동식물의 성장과정이나 자연에 미치는 영향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도시인들과는 반대로 매일 땅에 손을 대고 지구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땅이 식물을 생산해 내는 과정을 돕고, 자연의 생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 농부들의 특별한 열정을 담아냈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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