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맛집’ 소개된 음식점 가보니 맛있던가요?

2011-08-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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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영화 ‘트루맛쇼’ 반향

트루맛쇼 한국 음식이라면 부족한 것 하나 없는 LA에 살아도 한국의 맛집 방송을 보면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다 잠을 못 이룰 만큼 그리움이 밀려든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가짜였다면 화를 내야 하나, 기쁜 소식이라고 해야 하나? 무분별하고 기상천외한 메뉴를 선보이는 맛집 쇼가 어느 정도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문적, 조직적으로 거짓을 조작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방송 출연 위해 뒷돈 등 비리
손님 가장 아르바이트생 쓰고
1회용 메뉴 급조하는 실상 ‘씁쓸’



식당이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대행사에 뒷돈을 얻어주고 스케줄을 따낸 후, 메뉴에도 없는 자극적인 가짜 음식을 만들고, 이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손님들까지 모두 돈 주고 쓰는 아르바이트생이었음을 폭로한 ‘트루맛쇼’가 지난 4월 전주국제 영화제를 통해 개봉하며 관객상을 수상하고 큰 반향을 몰고 왔다.

전직 문화방송 PD 김재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는 부제를 달고 그 어느 맛집 쇼보다 흥미진진한 내용을 소개한다. 2010년 발표된 국세청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하루 515개의 식당이 창업하고 474개가 폐업하는 서바이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생존하기 위한 식당들의 처절한 투쟁 속에 맛의 순수함은 사라져 버리고 미디어와 식당의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됐다. 지난 2010년 3월 셋째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의 식당이 맛집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이러한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전직 PD들로 구성된 제작자들은 TV의 맛집 코너 출연을 목적으로 식당을 차려버린다. 식당 곳곳에는 몰래카메라가 설치되고 막 오픈한 새 식당이 맛집으로 둔갑해 TV에 출연하는 과정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준비 과정동안 그들은 맛집 소개 코너에 손님을 가장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맛집의 자극적인 메뉴를 개발하는 메뉴 개발자를 만나며, 처음 가본 식당을 스타 맛집으로 소개해야하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그들의 식당이 오픈을 하고, 맛집 프로 대행사와 상담, 자극적 메뉴 개발자와 만남 등의 과정을 거쳐 평범한 식당이 맛집으로 둔갑해 드디어 공중파에 소개된다.

무지막지한 양의 청양고추를 다져넣어 튀긴 돈까스가 그들의 메뉴.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화끈하게 스트레스 풀어주는 음식으로 TV에 소개한다. 물론 메뉴에도 없는 음식이다. 방송 출연 후 목적을 이룬 그들의 식당은 문을 닫는다.


TV 출연이 곧 돈으로 통하면서 캐비어 삼겹살처럼 식재료 고유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야말로 ‘무식한’ 음식을 만들어내 한번 방송 출연용 메뉴로 사용하고 마는 무분별함은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식문화 전체의 수준을 끌어내리게 된다.

뭔가 통제가 필요해보였던 맛집 쇼에 확실하게 찬물을 끼얹은 트루맛쇼, 진실을 가려 볼 줄 아는 눈을 키우는 동안 채널 고정은 없을 듯하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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