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 한마디가 천냥빛을 갚는다.

2011-08-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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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려하고 걱정했던 부채한도 증액안이 연방하원을 통과하여 미국정부가 디폴트에 가지 않도록 의결하는 그 자리에 미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참석하여 모두가 감격하고 환호하며 그를 맞았다고 한다. 가브리엘 기포드 하원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초 애리조나 투산의 한 그로서리 마켓 앞에서 20대의 백인 남자가 총을 난사해 9살의 여자아이, 연방 판사 등 여섯 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는데 그 중상자들 중의 한 명이 민주당의 기포드 하원의원이었다.

3선 의원인 그녀는 당시 유권자들과 만나는 행사를 갖고 있던 중 공격을 받아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어 응급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처음 눈을 뜨게 된 순간이나,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 등이 일일이 보도되며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강인한 의지와 의술의 힘이 합
해져서 무사히 치유되기를 바랐었고 기쁘게도 현실이 된 것이다.


한 편 범인의 집에서는 여러 가지 미리 계획된 범행으로 보이는 증거물들이 나왔다.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온전치 못해서 재판을 받을 능력조차 없다는 범인은 전부터 인터넷을 통하여 반정부적이고 극우적인 주장을 펼쳐왔기 때문에 반이민 혐오조직과의 연관성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아직 어려서 판단이 미숙한 젊은 청년이 이런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에는 폭력적인 정치언어와 총기소지법, 그리고 정신 건강정책의 문제점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정치인들의 증오에 찬 연설과 총기소지가 쉬운 주위 환경이 정신 분열을 앓고 있는 레프너에게 총을 들게 하였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지난 11월 선거에서 기포드에게 패배한 제시 켈리는 선거운동 때 자신의 웹사이트에 “가브리엘을 몰아낼 수 있도록 제시 켈리와 함께 M16을 쏘자”고 선동 했다.

그 뿐인가 티 파티(tea party)의 한 주축이며 전 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새라 페일린은 애리조나주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의료보험 논쟁 당시, 총의 십자판 표시를 지도위에 그려 놓은 살생부를 만들어 “후퇴하지 말라, 재장전하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나쁜 결과를 특정인에게 전가하여서도 안되지만, 이번 일은 말로 미움과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의 일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닌 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한 번 돌아봐야 할 사건인 것 같다.

즉 대중매체를 통한 정치선동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특히 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키워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일으킨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어떤 결과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이 번 사건에도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중의 하나가 예산 삭감에 관한 것이다.

이미 2010년에 애리조나도 의료비 관련 예산이 이미 큰 폭으로 삭감되었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을 비롯하여 모든 의료보장 서비스가 축소되었고, 이 때문에 심각한 질병을 포함한 모든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의 어느 주보다도 정신질환자의 비율이 높다는 애리조나는 놀랍게도 병원에 수용된 정신병자보다 무려 10배 이상의 정신질환자가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적자상태에 쳐한 정부는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예산을 앞으로도 계속 더 큰 폭으로 삭감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 사건을 일으킨 레프너도 그의 정신분열적인 행동이 다른 학생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다니던 대학에서 퇴학을 시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만약 학교가 부모에게 학생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면, 학생이 받아야할 치료에 대해 재정적인 책임을 학교가 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역시 엄청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학교가 취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의료비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면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이 번 사건처럼 단지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옮겨가서 더 큰 지출을 해야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그나마 안타까운 중에도 언론이나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듣게 되는, 총격사고로 숨진 고인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평범하지만 건전하고 용기 있는 시민정신의 실례를 보는 것 같아 감동적이고, 이렇게 바른 시민정신을 가진 대부분이 사회구성원을 이루고 있어, 이게 바로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건후, 극우주의 공화당 의원들의 총기를 빗댄 파괴적이고
선동적인 말들에, 이 젊은이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었다.

그 사건의 피해자중의 한사람인 기포드의원이 7개월 만에 하원에 출석하여 인간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었고, 부채한도 증액안이 통과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다 회복되지 못하여 아직은 힘들지만 화해와 용서를 바란다면서 말한 ‘Thank you”란 한마디가 그 자리에 있던 의원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하니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속담이 생각나게 한다.


정연중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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