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14> 베니스

2011-07-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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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풍 운하 주택 등 들어선 리조트 건설하며 명명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14>     베니스

1920년대 베니스비치 운하의 여유로운 모습.

1891년 담배제조로 백만장자가 된 애봇 킨니(Abbot Kinney)라는 사람과 그의 동업자가 샌타모니카 남쪽 바닷가 지역의 땅을 매입한 후 리조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이 오늘날의 베니스비치이다.

평소에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흠모하던 애봇은 자기 땅에 꿈을 실현코자 베니스풍의 주택과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05년 7월4일 그는 이 지역에 물길을 만들어놓고 370미터에 달하는 긴 피어를 만들어 레스토랑 선박을 비롯하여 박물관, 댄스홀, 스파시설의 목욕탕 등의 이탈리아 베니스풍의 건물을 지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수많은 LA와 샌타모니카의 관광객들은 ‘Red Cars’라고 불렀던 전차를 타고 이곳을 방문했는데, 임대 형식의 작은 통나무집과 텐트하우스는 경사진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더불어 인기상품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부동산은 쉽게 이루어졌고, 인구도 급증해 1911년 베니스의 오션 팍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갖게 되었다.


1910년의 3,000여가구 수가 이듬해에는 1만여가구로 늘어났으며 주말에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수도 5만에서 15만명 선이었다고 한다.

1910년 베니스비치의 킨니 피어(Kinney Pier)는 놀이공원으로서의 최고점에 이르던 시기였다. 각종 놀이기구들과 상점들이 즐비했지만, 각종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킨니는 치안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1920년 11월 그가 사망하자 베니스의 치안은 불능상태에 이르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해 12월에는 놀이공원은 화재로 폐허가 돼 인근 가게들도 문을 닫는 사태에 도달했다.

킨니 유가족은 서둘러 복원사업을 펼쳤으며 새로운 놀이시설을 설치하여 베니스비치의 인기를 그나마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되면서 운하는 ‘시대에 뒤처진 풍경’이란 지적과 함께 1929년부터 대부분의 운하가 흙으로 메워지며 자동차 도로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인구 증가에 비해 상하수도 등 각종 사회시설이 엉망인 상태로 방치돼 결국 LA시에 합병되는 계기가 됐다.

그 후 남아 있던 운하는 황폐해진 채 60여 년의 세월을 버티다가 1982년 국가 역사보존지역(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으로 등록됐으며, 1992년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이듬해인 1993년 새롭게 단장된 베니스비치 운하는 마침내 아름다웠던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운하의 공식명칭은 ‘rand Canal’이며 현재 그랜드 운하 주변의 베니스풍의 그림 같은 집들은 수많은 사진작가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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