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양한 향과 맛 ‘맛 내는 마술사’

2011-06-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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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신료의 세계

고대로부터 값진 재물, 질병 치료제, 방향제, 부의 상징, 종교용품, 요리와 음식 저장으로서의 이 모든 기능을 담당했던 물질이 있는데, 다름 아닌 ‘향신료’(spice)가 그것이다. 기원 전 10세기께 솔로몬을 방문한 시바의 여왕이 금, 보석과 함께 ‘방향물’을 선물로 드렸다는 이야기로 성서에 등장하여 금과 동일한 값진 재물의 동의어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바벨론의 왕은 향신료를 듬뿍 넣은 요리와 포도주를 좋아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 전 330년께, 페르시아에 침입했을 때 다리우스 2세의 궁전에서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수많은 노예들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고대 ‘부의 상징’… 획득 위해 원정탐험 시작
종류 수천가지 달해, 산지 따라 개성 달라져

고대 이집트 역시 약용식물을 신에게 봉헌하고,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는데 사용했다.

유행처럼 왕조를 통해 귀족과 재력가들에게 퍼지며 비싼 향신료를 얼마나 요리에 많이 사용했느냐로 과시하는 문화가 생겨났는데,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향신료 자체가 요리의 가치와 식탁의 품격을 좌우하기도 했다. 후에 수도원의 식탁에도 등장했고, 일반 사람들도 그들의 먹을거리가 맛이 심심한 콩 종류에 지나지 않을 때, 조금만 넣어도 맛을 완전히 바꿔주는 향신료를 알고는 열광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미라의 부패방지를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고, 이를 획득하기 위해 해양 원정대를 편성해 홍해 북쪽에서 남쪽까지를 항해한 후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유프라테스 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적인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향신료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렬해 지고 새로운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 전 세계로의 탐험이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18세기부터는 여러 가지 향신료들을 혼합하여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기 위한 전문적인 양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전처럼 재물이나 과시로서의 남용은 줄어들어, 요리도 그 맛 자체로 평가되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보다 강한 향과 맛의 동양의 향신료들이 알려지고, 서양에서는 중세시대에 그토록 선호되었던 강렬한 맛의 유행은 사라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향신료는 식물의 꽃, 열매, 씨, 수피, 뿌리 등으로 자극성 있는 향기를 가지고, 식재료와 함께 요리하면 향미가 첨가되어 맛을 좋게 하고, 식욕을 증진하고 소화를 돕는 등 몸도 이롭게 하는 식물성 물질을 말한다. 각 지방의 풍토에 따라 같은 종류라도 향과 맛이 다르게 자라니 짙은 개성을 가진 고유의 음식을 만드는데 빠질 수 없는 식재료가 되었다.

세계의 향신료들을 갖춘 스파이스 스테이션은 하우스 블렌드(맨 위)는 물론 신선한 재료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정향·강황·팔각·넛맥…
이국적인 맛 내는데도 필수


<한식에서 사용하는 향신료>

한식에도 향신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종류들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고추, 마늘, 후추, 겨자, 참깨, 생강, 카레의 원료가 되는 강황, 계피, 팔각, 치자, 산초 등은 향과 맛은 물론 약성도 뛰어난 종류의 향신료들이다.

맛과 향이 순하고 좋은 미나리, 방아잎, 오미자를 비롯하여 박하, 바닐라 등은 물론이고, 각종 허브 종류와 그 씨앗 등이 모두 향신료에 속한다. 적절히 고기나 생선냄새를 없애주면서도 맛을 더 돋보이게 도와주며, 국물에도 깊고 다양한 맛을 내주고, 소스 등에 한층 맛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부재료로서 보다 세련되게 사용되고 있다. 실제 요리에 사용하면 그 효과를 확실히 알 수 있어 향신료만 잘 사용해도 요리의 재미도 톡톡히 느껴 볼 수 있다.

20여종의 말린 고추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향신료의 대명사 2가지>

사용하기 편리하게 제조된 제품으로 대명사가 된 미국의 올 스파이스(all spice; 계피, 정향, 넛맥을 섞은 것)와 중국의 파이브 스파이스(five spice; 계피, 팔각, 정향, 시추안 페퍼, 펜넬 등을 섞은 것)를 꼽을 수 있겠다.

두 종류 모두 워낙 유명해 어디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인데, 올 스파이스는 달면서도 맵고 따뜻한 성질을 내는 향신료로, 애플 또는 펌킨파이에 빠져서는 안 되며 핫초컬릿 등의 음료를 만들거나 육류요리에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파이브 스파이스 또한 볶음밥, 채소볶음, 육류요리에 첨가하면 그야말로 이국적인 중국 냄새가 물씬 나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카레의 원료가 되는 선명한 노란색의 강황.

향신료 가게 ‘스파이스 스테이션’

향기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때, 그 순간의 추억을 완벽히 재생해 내는 신비가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은 물론이고, 코를 틀어막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도저히 이건 못 먹겠다! 외치게 만든 것도 원인은 향신료다. 향기의 기억을 찾아 다시 여행을 떠나고픈 설렘에 가슴이 울렁이는 독자들을 위해 한인타운과도 가까운 실버레익에 위치한 ‘스파이스 스테이션’(Spice Station)을 소개한다.

큰 길에서 옆으로 난 좁은 뒷골목으로 빠져들듯 비밀스럽게 위치하여 이국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이 가게는 세계의 모든 향신료를 만나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20여종이 넘는 마른 고추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이공 계피를 살 수 있고, 스페인의 파프리카와 페루의 파프리카를 비교해 보며, 시리아산 코코넛의 향을 맡아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캐나디안 알메니안인 오너 피터 발라워니안(Peter Bahlawanian)과 그 아내인 브론웬 타우스(Bronwen Tawse)는 오픈 일년반 만에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자리 잡아 샌타모니카와 캐나다 몬트리올에도 분점을 냈으며, 올 7월에는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에도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피터는 사람들이 향신료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마켓에서 병에 든 말린 베이즐을 구입하면 파운드에 165달러를 지불하는 것인데, 스파이스 스테이션에서는 보다 다양한 종류의 말린 베이즐을 파운드에 20~40달러 선에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작은 병에 담겨 진열되어 있는 모든 스파스이의 향을 맡아보고, 먹어보고 구입할 수 있다.

요리의 맛내기를 쉽게 도와주는 여러 가지 하우스 블렌드 제품뿐만 아니라 각종 선물세트의 구성도 매우 훌륭하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신선하게 향이 살아 있는 향신료를 구입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트러플 솔트, 사이공 시나몬, 페퍼콘 블렌드, 여러 가지 맛의 설탕 등이 있으며, 100종류가 넘는 티와 함께 예쁜 티룸에서 테이스팅을 할 수도 있다.

돈으로 거래될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향신료.

<스파이스 스테이션 주소>
● 실버레익 점: 3819 W. Sunset Blvd. LA, CA 90026
전화 (323)660-2565
● 샌타모니카 점: 2305 Main St. Santa Monica, CA 90405
전화 (310)450-0505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 샤프론(Saffron)

샤프론은 프랑스 남부지방이나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많이 재배하는 크로커스 사티부스라는 식물의 자주색 꽃이 피는 10월께 3개밖에 없는 꽃의 암술을 채취해서 말린 것으로 꽃을 딸 수 있는 기간 또한 보름으로 정해져 있다.
샤프론 1kg을 얻기 위해서 자그마치 16만개의 꽃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가 되었다.

스페인 음식 빠엘라를 만들 때, 쌀을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독특한 향을 내고, 프랑스의 지방 요리인 부야베스를 만드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되는 향신료이다. 스페인산을 고급으로 친다.


<글 ·사진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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