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9> 로데오 이야기 ②

2011-05-20 (금)
크게 작게

▶ 1920년대 LA-베벌리힐스 합병안 부결‘도시속 도시’로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9>     로데오 이야기 ②

John Kim의 spanish Class (323)346-7749

발데스 사망 이후, 1850년 9월9일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주로 편입된 지 얼마 안 된 1852년 Maria Rita Valdez DeVilla는 그녀의 목장 ‘Rancho Rodeo de Las Aguas’(물로 둘러싸인 목장이라는 뜻)를 4,000달러에 헨리 행콕에게 매각하고, 행콕은 다시 사들인 땅을 곧 바로 분할 판매하게 되어 주택단지로 조성된다.

1906년 10월22일 이 지역의 주민들은 매사추세츠의 베벌리 팜스(Beverly Farms) 이름을 본따 베벌리힐스(Beverly Hills)로 명명했다.

이후 1911년 9월 Beverly Hills Hotel이 지어지자 LA타임스는 이를 ‘괴물 여인숙’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LA의 한 구획의 토지 값이 대략 2,000달러인데 비해 엄청나게 높은 가격인 30만달러를 호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8께 무비 스타들이 줄지어 들어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터무니없던 이 지역의 토지 값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 당시에 잘 나가던 스타들 Harold Lloyd, John Barrymore, Robert Montgomery, Miriam Hopkins 등이 저택을 짓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서 1920년에 674명에 불과하던 지역 인구는 1924년에는 5,000명, 그리고 1930년에는 1만7,429명으로 늘어났다.

1923년 LA시의 일방적인 합병 계획안이 발표되자, 베벌리힐스 주민인 Mary Pickford, Will Rogers를 비롯하여 다른 몇몇 주민들이 앞장서서 계획안에 반대투표를 주동했고, LA시는 이에 맞서 더 좋은 질의 물 공급이라는 캠페인으로 맞서기도 했다.

실제로 베벌리힐스의 물 배달원들은 각 가정의 현관에 유황의 냄새가 나는 물병과 함께 다음 글을 남겼다고 한다. “주의! 이 물을 마시는 것은 설사약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합병안은 507 대 337로 부결됐고, 이듬해 베벌리힐스 주민들은 40만달러의 기금을 조성, 양질의 수도 공급 시스템을 갖춘 Beverly Hills Utilities Company를 세울 수가 있었다.

이같은 베벌리힐스 주민들의 투쟁 결과는 미국에서 최초의 도시 안의 또 다른 독립된 도시의 예를 남기게 됐다.

같은 해 베벌리힐스 주민들은 LA시와 샌타모니카시, 그리고 베니스시와 함께 10만달러의 기금을 마련, 385에이커의 부지를 확보해 UCLA의 건물을 짓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금의 베벌리힐스의 로데오 드라이브(Rodeo Dr.)에서 시작되는 Beverly Hills Trolley(40분간의 관광투어로 트롤리버스를 타고 베벌리힐스의 주거 지역을 돌면서 할리웃 유명 스타들의 집을 구경하는 코스)가 연예계 가십 전문 사이트인 TMZ와 할리웃 스타의 저택을 돌아보는 스타라인 투어가 손을 잡고 2011년 5월1일부터 이색적인 관광상품인 “할리웃 스타와 절도로 사고 친 장소”를 관광상품으로 내놓았다. 관광 안내자가 마이크로 “여기가 바로 위노나 라이더가 절도하다 붙잡힌 그 유명한 백화점이랍니다!”라고 떠드는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