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몽땅 팝니다 (Everything Must Go)

2011-05-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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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몽땅 팝니다 (Everything Must Go)

닉(윌 페럴)이 야드세일 의자에 앉아 오수를 즐기고 있다.

★★★ (5개 만점)

“내 지나온 삶을 야드세일 합니다”

집과 회사에서 쫓겨난 남자 이야기


자신의 온갖 소유물들을 집 앞마당에 내다 놓고 야드세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하려는 남자에 관한 야단스럽지 않은 상냥한 드라마다. 귀중한 것과 잡동사니를 비롯해 자신의 과거가 묻어 있는 것들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겪는 남자의 후회와 회한과 그리움 그리고 이런 것들마저 말끔히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면하게 되는 새로운 삶의 기회의 얘기가 조용하고 은근하다.

거의 전부가 남자가 마당에서 며칠 간 자기 물건들을 파는 얘기여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단조로운 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주연 배우 키다리 코미디언 윌 페럴의 민감하고 감정적으로 뉘앙스를 갖춘 좋은 연기 때문에 볼만하다.

우리가 보통 아는 그의 요란한 코믹한 연기 대신에 큰 제스처 없는 얼굴 표정과 눈 연기 그리고 절제된 동작으로 과거를 빠져 나오려는 사람의 모습과 느낌을 아주 미묘하게 해낸다. 그와 함께 나오는 조연들의 차분한 연기도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

슬며시 가슴에 와 닿는 소품으로 유머와 습기를 함께 지닌 달콤쌉싸름한 작품인데 원작은 레이먼드 카버의 ‘왜 당신은 춤을 안 추나요?’(Why Don’t You Dance?).
애리조나의 한 도시. 회사의 성공한 세일즈맨 닉 포터(페럴)는 어느 날 느닷없이 술버릇을 못 고친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닉은 알콜 중독자다. 그가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영화에선 모습을 안 보인다)가 자기 물건을 몽땅 앞마당에 내다 놓고 집의 자물쇠도 바꿔버린 뒤 집을 나가버렸다.

아내는 또 닉의 크레딧 카드를 취소시키고 공동 은행계좌마저 동결, 닉은 지갑에 있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해야 할 판. 물론 잠 잘 곳도 없어 마당에 내놓은 의자에서 잔다. 그러면서도 닉은 밥보다도 맥주를 연상 마신다.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닉을 찾아와 물건들을 빨리 정리하라고 경고한다. 닉을 도와주는 사람이 그의 AA 모임의 스폰서인 형사 프랭크(마이클 페냐). 프랭크는 닉에게 며칠 시간을 줄 테니 물건들을 팔아 없애라고 건의한다.

닉은 이어 야드세일에 들어가는데 자신의 고교 졸업 앨범에서부터 밥 딜런의 음반 그리고 옷가지와 가재도구 등 별의별 잡동사니들이 많다. 닉의 세일을 도와주는 아이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흑인 소년 케니(크리스토퍼 조단 월리스가 페럴에 상대되는 좋은 연기를 한다). 케니는 닉으로부터 간단한 조언을 받은 뒤 세일즈맨으로서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또 과묵하면서도 말 주변이 좋아 손님들이 물건을 사도록 유도, 장사가 잘 된다. 타고난 세일즈맨이다.
영화는 닉과 케니 그리고 닉의 길 건너 집으로 혼자 이사 온 임신한 사진작가 새만사(레베카 홀)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이런 저런 문제와 얘기들을 나누는데 그 관계와 모습이 정감 있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면은 닉이 고교시절 자기를 좋아한 딜라일라(로라 던)를 앨범에서 발견하고 그를 방문하는 것. 아이를 혼자 키우며 사는 딜라일라나 닉이 이제 둘은 모두 과거 사람들이 아니요 또 자신들의 삶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모습이 연민스럽다. 댄 러쉬 감독.

R. Roadside Attraction. 랜드마크(31-282-8233), AMC 크라이티리언(샌타모니카) 등 일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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