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라브레아 목장 이야기 ④

2011-05-06 (금)
크게 작게

▶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7>

18세기 ‘알타 캘리포니아’ 미션시대 개막

오늘은 라브레아 목장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로,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 본 Los Angeles, La Cienega, La Brea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한 번 살펴보기 위해 미국이란 나라가 생기기도 훨씬 전인 1741년 대의 알타 캘리포니아 시대로 가 보자.

1741년께 알래스카를 발견하고 개척한 러시아 탐험선들이 남하하여 캘리포니아 지역을 넘나들기 시작하자 스페인의 국왕 필립 5세는 알타 캘리포니아로의 이주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28년이 지난 1769년 2월, 마침내 육지를 통한 최초의 탐험이 이루어져 미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미셔네로(Misionero: 미션 수행자)인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를 주임신부로 임명하고 그리고 바하 캘리포니아의 집정관이었던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Gaspar de portola)를 알타 캘리포니아의 주지사로 임명함으로써 대대적인 캘리포니아 인구 이주정책이 시작됐다.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미션팀이 지나간 길을 엘 까미노 레알(El Camino Real)이라고 불렀는데, El Camino는 ‘길’이라는 스패니시이며, Real이란 영어의 Royal에 해당하는 단어로 스페인 국왕 혹은 ‘왕가’를 뜻하는 말이다. (유명한 스페인 프로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도 같은 의미로 ‘마드리드의 왕가’란 뜻이다)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던 미션 팀은 현재의 LA가 위치한 지역에서 내륙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지금의 윌셔와 라브레아 지역을 지나가던 크레스피(Padre Crespi) 신부는 콜타르가 녹아서 검은 호수를 이룬 것을 보고는 ‘라브레아’라고 이름지었다.

그의 기록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1769년 7월20일 작성한 기록에서는 일행은 현재의 라브레아 캐년과 샌개브리엘 밸리 사이 작은 강 옆에서 캠핑을 했는데, 강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이 풍요롭고 기름진 땅임을 보고 ‘Nuestra Senora la Reina de Los Angeles’(직역하자면 ‘성스러운 천사들의 우리 여왕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LA란 지역명의 시작이다.

다음날 행콕팍 지역으로 들어선 일행은 검은 색의 타르(La brea negra)가 녹아 부글거리는 검은 늪지(las cienegas negras)을 발견했다. 여기서 라브레아는 ‘타르’, 라시에네가는 ‘늪지’란 뜻이다.
이들은 지금의 샌타모니카(성자 모니카란 스패니시) 지역과 말리부 해안을 따라 북상하려던 계획을 바꿔 내륙 북쪽으로 이동, 지금의 벤추라 블러버드(Ventura Boulevard: 벤추라는 ‘모험’ 혹은 ‘운’이라는 뜻의 스패니시)를 따라 샌퍼난도 밸리(San Fernando Valley) 지역으로 돌아 서쪽의 바닷가로 이동했다.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이라고 불리는 이 길을 따라서 나중에 세워진 도로가 101번 프리웨이다.


John Kim의
Spanish Class
(323)346-7749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